여름기록] 여름 밤, 날 찾아온 그 것.
악몽도 결국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일 뿐.
나는 꿈을 참 자주 꾸는 편이다. 매일 꾼다고 봐도 무방하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을 더듬어 보면 영 개연성 없는 스토리에 황당무계한 요소들이 가득할 뿐이지만, 꿈이라는 자각 없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 주는 공포와 위압감으로 심장 박동수가 요동을 치며 일어나게 된다. 내 꿈은 공포 스릴러가 주 장르인데 누군가를 쫓거나 쫓아가거나, 목숨을 위협받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프로이트를 탐독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류의 꿈을 자주 꾼다는 것이 그다지 건강한 정신 상태가 아님은 알고 있다.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 탓도 있을 테고 자라온 환경의 불온전함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평생을 이런 상태로 살아온지라 매일 밤 벌어지는 꿈 속 상황을 버티는 것이 힘겹거나 어렵지는 않다. 간혹 지나치게 참혹하고 심적 혼란을 가져오는 꿈을 꾸면 며칠 정도는 일상 생활 속에서 미미하게 정서적 불안을 겪는 정도였을 뿐이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 시리즈물로 꾼 침입자 꿈은 꽤나 오랫동안 나를 심적으로 지치고 무너지게 만들었다. 총 세번의 밤에 침입자가 들어왔고, 각 밤은 서로 다른 장소, 하지만 내가 익숙하게 지냈던 공간이고, 안정과 안전을 모두 느꼈던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침입자의 등장이 더더욱 큰 공포감이 되어 왔으리라. 첫번 째 침입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 일어났다. 현재 거주지는 현관을 들어서면 긴 복도가 연결 되어 있고 그 끝에는 쇼파의 일부가 보인다. 꿈의 시작은 그 쇼파에 누워 있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늘 편히 누워 있던 그 자리에 누워 있던 중에 현관문 손잡이가 철컥이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린다. 손잡이가 천천히 아래를 향하는 장면이 눈에 담기고, 뒤이어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이어진다. 띡. 띡. 띡. 띡. 느린 박자로 버튼음이 조용한 복도에 울려퍼지고, 내 온몸에 소름이 스르륵 올라오기 시작한다. "누구세요"라는 공허한 울림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언제부터 시작된 불안감이지도 모르겠지만, 내 두 발은 어느덧 복도를 달려 나가고 있었다. 손잡이를 움직여 문이 열리지 않도록 손잡이를 부여잡은채 불투명의 현관문 밖에 서있는 미지의 침입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질 않는다. 마치 물 속에 가라 앉은 것 처럼 모든 행동이 무겁게 느껴진다. 부여잡은 손잡이를 놓으면 당장이라도 문이 열릴 것만 같은 불안감과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답답함을 느끼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던 순간, "독한년"이라는 침입자의 목소리가 두꺼운 철문 너머 들려오고 꿈에서 일어났다. 심지어 그 날은 더운 날씨로 인해 조금 더 시원한 거실의 쇼파에서 잠이 들었던 날이다. 비몽사몽 간에 꿈과 현실이 제대로 인지 되지 않아 그 새벽에 어두운 복도를 지나 현관문으로 가 문단속을 했다. 이중잠금까지 한 뒤에야 현실과 꿈이 분간되었지만 두려움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고, 불안증의 시작이 되었다. 그 날 이후 난 저녁 이후 어두운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섭다는 감정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방문을 열고 화장실에 가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두번째 꿈 속 침입은 외조부님댁에서 벌어졌다. 외조부님은 저층빌라의 1층에 거주하고 계신다. 외조부모님 두 분께서 오랜 시간 가꾸고 관리해온 집은 언제 방문하더라도 현관부터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가득 주기 충분했다. 빌라의 1층이지만 빌라 입구에서 반층 정도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외조부님 댁의 주방 쪽 창문은 집 안에서는 가슴께부터 천장까지 연결되어 있지만 밖에서는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꿈에서는 달랐다. 안쪽에서도 가슴께부터 시작하는 창문인건 똑같지만, 밖에 있던 남자 역시도 가슴께 정도 위치에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든지 그 창문을 훌쩍 뛰어 넘어 집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얼굴도 인상도 기억나지 않지만 목적없는 분노만 가득한 눈빛만큼은 1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그 자는 창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창문을 걸어 잠그고 무슨 짓이냐 외치며 손에 쥔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려 한다. 다른 손으론 반려견을 끌어 안고 다시 창문을 본 순간, 그 남자가 빨간 고무 대야를 들고 창문을 부수려 하는 장면이 보인다. 있는 힘껏 내리친 대야에도 다행히 창문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 남자는 다시 한 번 대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또 다시, 또 다시 창문을 향해 있는 힘껏 대야를 내려친다. 경찰과 통화 했는지도 불분명하지만 꿈속의 나는 경찰이 어서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며 품속의 강아지를 잔뜩 끌어 안고 덜덜 떨 수 밖에 없다. 그러다 깼다. 깬 순간 품 속에 강아지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다시한번 그 강아지가 이미 무지개 다리 건너 강아지별로 갔음을 상기했다. 내 강아지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슬펐고, 혹여나 외가댁에 정말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 걱정이 들어 다시 잠에 들 수 없던 밤이었다. 날이 밝고 외할머니께 연락 드려 별일 없음을 전해 들었지만, 이 날의 침입자가 보였던 그 눈동자를 잊을 수 없던 나에게는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병증이 추가되었다.
마지막 침입은 오래전 내가 살 던 단독 주택이었다. 대문이 있고 마당을 가로질면 집이 나오는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의 단독주택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이지만 지금도 마당에 활짝 피었던 철쭉과 채송화, 뒤뜰에 있던 할머니의 작은 텃밭에서 자라던 딸기를 따먹으며 옥수수 사이를 뛰어 다니다 여린 살에 생채기가 생겼던 날들이 생생하다. 이미 오래 전 사라진 집이지만 꿈 속에선 다 큰 내가 그 집의 마당을 거닐던 중 대문 밖으로 드리워지는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온 가오나시와 비슷한 느낌이고 한국 설화 속 어둑시니 같은 모습이었다. 형태가 불분명한 시커만 덩어리가 점점 커지면서 대문 밖 길 어귀에서 대문 쪽으로 또 다시 대문을 너머서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여고괴담의 명장면처럼 보인다. 사람도 아닌 것이 여기가 어딘데 들어오냐는 거친 나의 목소리에도 그 그림자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점점 더 집 안으로 들어온다. 집 안에 있던 가족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려 있는 힘껏 소리치지만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사람 아닌 존재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가득한 채 잠에서 깨어나니 이 감정이 현실에까지 미쳤다. 세 번의 밤을 보내며 키워진 불안증은 마지막 밤을 기점으로 정점에 도달했다. 어두운 집에 혼자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감은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 누군가 있을까봐 한 번 눈을 감으면 다시 눈을 뜨기조차 두려워 했다.
작년 여름에 저런 꿈을 유난히 자주 꾸고, 불안증이 생겼던 것은 아마도 심적인 부담이 극에 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나는 석사 4학기를 앞둔 여름방학 중이였고, 4학기 안에 졸업해야 한다는 주위의 기대에 충족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학과 내의 여러 규정과 일들이 겹쳐 4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최소 5학기 혹은 그 이상을 더 석사 과정생으로 지내야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스스로 계획한 일이 어긋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는 저런 정도의 압박감조차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내 계획은 4학기에 졸업하고 바로 박사 과정을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계획이 내 통제 밖의 일로 인해 어그러졌다고 생각하니 남들 다 하는 석사 졸업을 왜 나만 못하는 것인지 불만이었고, 내 잘못이 아닌 일임에도 내가 부족해서 나만 졸업 못하는 일이라 자책까지 시작했다. 눈 뜨고 있는 시간동안 피어오른 부정적인 감정은 무의식까지 지배했고, 그 무의식은 악몽이 되어 다시 현실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뫼비우스의 띠가 된 것이다.
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시간은 근 1년이 걸렸다. 그 사이 나는 수시로 과한 심장 두근거림을 겪으며 잠에서 깨어나길 반복했고,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에도 홀로 있는 시간에 불안감을 느끼는 일이 잦았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다스리고 토닥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더했다. 통제불능의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그 시간을 통해 날 더 제련한다 여기기 시작했고, 오지 않은 미래의 일보다 당장 눈앞에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졸업을 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흥미로워 하는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했고 그만큼 온전한 휴식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이것 저것 잔뜩 사 둔 뜨개 인형 패키지를 하나씩 열어 들고 완성해나가기 시작했다. 책장에 책은 더더욱 가득 채워지고, 인형은 삼형제를 이루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더이상 어둠 속의 무언가를 불안해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는 졸업도 하지 못했고 언제 졸업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작년 여름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뭐 언젠간 졸업하지 않겠는가. 올해도 역시 침입자가 들어오는 악몽을 꾸었지만 작년과는 확연히 달랐다. 올 여름의 침입자들은 다들 내 윽박지름에 집 밖으로 내쫓겨났고, 그 과정에서 나에게 머리채를 잡히기도 멱살을 잡히기도 하였다. 이 꿈을 꾸고 난 나의 감상은 나는 작년에 비해 조금 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인간이 되었구나 였다. 졸업을 못하면 어떠한가. 일 년 사이에 내가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는 것을 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