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우면 입맛이 떨어진다는데 기미조차 없다. 오히려 더위로 인해 기력이 달리니 더욱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입이 비기 무섭게 채워 넣었다. 핑계도 참 가지가지다. 다른 절기나 기념일(?)은 챙기기는 커녕 그런 날이 있나 싶게 지나가지만 초복, 중복은 육해공 알차게도 챙겨 먹었다. 에어컨 바람을 좀 많이 쐬어 으슬으슬하다며 든든하게 먹고, 야외 활동을 한 날은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며 다른 날에 비해 더 잘 그리고 많이 먹었다. 가뜩이나 코로나 이후 실내 활동에 제한이 생기면서 살이 뽀동뽀동하게 오른 몸에 잘 먹고 잘 쉬는 여름까지 보내고 나니 좀 더 정육면체에 비슷한 체형이 완성되버렸다. 더욱이 30도를 훌쩍 넘는 기온이 지속되면서 불 앞에 서있기 힘들다는 핑계로 냉동식품과 배달음식이 주식이 되면서 늘어난 몸무게와 뱃살만큼 건강도 나빠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안되겠다 뱃살도 문제고 건강도 문제다. 밥을 해야겠다. 대신 가스불은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가스비도 줄이고 건강한 식단도 챙기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목표는 단 하나. 불 켜는 시간은 최대 10분일 것!
그 목표 하나로 밥상 차리기를 시작한다. 우선 밥은 왕창 지어서 종이 호일로 소분해 둔다. 라면 포트에 찜기를 넣고 소분된 밥을 그대로 넣어 데우면 새로 지은 밥 처럼 윤기가 난다.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밑반찬을 다 긁어 모아 밥에 쏟아 넣고 고추장 약간에 참기름 휙 둘러 슥슥 비비면 밥 한공기가 어쩐지 냉면기로 한 대접이 되어 버리지만, 밥알 한 알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게 된다. 오래 끓여야 맛 좋아지는 미역국에는 미역귀라는 치트키를 쓴다. 2인분량 기준으로 10센치 정도 줄기 하나 넣으면 순식간에 뽀얗고 진한 국물이 완성된다. 다른 토핑은 필요 없다.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를 볶지 않아도 되고, 황태채에서 가시를 빼는 수고를 덜 어도 좋다. 카레는 깍둑 썰어둔 야채가 익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지 카레가루는 물에 넣어 3분만 끓여도 충분히 점도가 생긴다. 물에 카레가루를 넣고 우르륵 끓여 걸쭉하게 만들고 야채는 올리브오일 휙 둘러 에어프라이기에 넣어버린다. 밥 위에 카레 국물을 넉넉히 부어내고, 그 위에 구워져 나와 더 먹음직스러워진 색색의 채소를 올리면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카레가 완성된다.
면 삶는 시간조차 못 견딜정도로 덥고 지친 날이면 묵국수나 콩국수를 해먹는다. 잘 익은 묵은지를 꺼내 쫑쫑 썰고 살짝 양념을 더해 양푼이에 담아준다. 오이도 썰어 넣고 시엄마가 이 더운날 손수 쒀준 도토리묵도 감사한 마음으로 숭덩 숭덩 잘라 넣는다. 마지막으로 냉동실에서 꺼내 살얼음이 바작바작 씹히는 냉면육수를 부어주고 화룡정점 토핑으로 김가루와 깨보송이까지 넣으면 끝이다. 시엄마 덕분에 불도 안켜고 한끼 뚝딱 차려먹었다. 요새는 마트에서 콩물도 판다. 이 콩물에 오이만 잔뜩 썰어 넣어 먹어도 배가 든든하고 정수리까지 올랐던 열이 쑥 내려간다.
이도저도 다 귀찮은 날에는 샐러드다. 다이어트 한다고 사다둔 양상추도 대충 손으로 죽죽 찢어 담고 저녁에 먹으려 미리 손질해 두었던 자몽도 꺼내 올리고 야채칸 저 아래 구석에 박혀 시들시들해져가던 귤은 반은 즙을 내어 드레싱 대신으로 쓰고 반은 토핑으로 사용한다. 생전 손 안는 각종 견과류도 꺼내 뿌리면 좀 있어보이는 샐러드가 한 대접 완성된다. 이정도 양이면 건강식이 아니라 과식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내 기화되어 사라져버린다.
내가 차린 나의 밥상은 얼렁 뚱땅이다. 도마를 꺼내어 칼질하는 것 조차 사치스러운 기분이 들면 가위만으로 요리를 끝내기도 하고, 불을 빨리 끄고 싶다는 생각으로 좀 덜 익은 듯한 요리도 그냥 꼭꼭 씹어 먹는다. 밥을 먹다가 넣지 않은 양념 재료가 생각나도 그냥 싱겁게 먹는게 좋은것이려니 생각하며 본연의 맛을 즐긴다. 그렇지만 오롯이 내 취향을 반영한 밥상이다.내가 좋아하는 식감과 향을 가장 돋울 수 있는 조리법을 사용하고, 반조리 제품을 사더라도 내 입맛에 조금 더 맛있게 느껴지는 제품을 골라 약간의 손맛을 더해 밥상에 올린다. 외식 밥상이나 냉동 완제품은 따라올 수 조차 없는 완벽한 커스텀마이징 밥상이다. 밥상을 준비한다는 것은 비단 배를 채워 생명을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평소엔 미쳐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던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인 것이다. 남들 눈에는 어설프고 영양도 불균형해 보이고, 심지어는 어떻게 저런걸 먹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서태후의 만한전석이 부럽지 않은 훌륭한 밥상이다.
나를 위해 뜨는 뜨개질 역시 얼렁뚱땅이다. 뜨개질을 업으로 삼는 분의 눈으로 내가 뜨개질 하는 모습을 보면 바늘 쥐는 법도 이상하고, 뜨개편물을 마무리하는 것도 어설퍼 보일 것이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혼자서 어설프게 늘려둔 실력 때문에 새로 배우기도 애매하다. 완성된 뜨개물은 겉보기에는 이상하거나 엉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형태가 갖춰져있고, 마감이 되어 있기에 실이 줄줄 풀리지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섬세하게 살펴보면 마감이 엉성하거나, 형태가 얼그러진 부분이 분명 보인다. 그럼 어떠한가! 어짜피 내가 쓸 물건이고, 내 손길이 가득 담긴 물건이니 말이다. 내 필요에 의해 만들어 졌고,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만드는 내내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으니 그걸로 제 역할을 다 해낸 것이다. 내게는 완벽한 뜨개 작품을 만드는 것 보다 손 마디 마디 느껴지는 편물의 감촉과 내가 움직이는 만큼 성과를 보여주는 뜨개질 자체가 주는 행복이 필요한 것이고, 공장에서 만든 것 처럼 완벽하게 마감된 제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작부터 마감까지 내 손을 거쳐 만들어진 단 하나의 물건이 가지고 싶은 것이다. 밥상도 뜨개질도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