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까지만 해도 더위로 인해 찌들찌들 했는데 요 며칠은 아침 공기가 제법 서늘하다. 바람이 집 안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좋아해 아주 춥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 거의 늘 온 집안의 창문을 열어둔다.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라 자기 위해선 침실의 창은 꼭꼭 닫지만, 요즘 같은 날에는 거실 창을 닫지 않는다. 정체된 공기 속에서 밤잠을 자고 일어나 방문을 나서면 거실 가득 들어온 새벽 공기가 한 숨에 내 속으로 들어온다. 지난 여름 내 느꼈던 축축하고 늘어지는 여름의 공기가 아닌 경쾌한 가을의 공기와 떠오르는 태양 빛이 남아있던 약간의 잠기운마저 싹 몰아내준다. 한낮의 태양도 이제 더운 숨을 뱉어내지 않는다. 물 속에서 숨쉬는 것만 같던 무거운 공기가 가벼워지고 등 뒤로 넘쳐 흐르던 땀방울도 잦아들었다. 하늘은 높아지고 구름은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이 짧고 기쁜 계절을 맘껏 누리기 위해 자주 산책을 한다. 여름의 초록을 벗어두고 가을의 색을 찾아가는 나뭇잎들을 보며 개천가를 한가로이 걸어본다. 늘어지게 자는 고양이 옆에 슬며시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바닥으로 넘어오는 작은 생명의 온기를 느껴본다. 아아. 가을이다. 이렇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 또 다시 가을이 되었다.
계절의 변화는 옷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한여름의 무거운 공기를 버티고자 걸쳤던 가볍고 하늘하늘한 옷가지 옆으로 조금 더 도톰한 바지와 셔츠를 꺼내 정리한다. 행거에 걸린 외출복 원피스 옆으로는 가볍게 걸칠 가디건을 꺼내어 건다. 서랍 가장 아래 두었던 긴소매 잠옷을 위로 올린다. 옷장과 서랍을 살풋 정리 하면 이제 쇼파 위에 깔 매트를 꺼내 손질한다. 이 매트는 내가 만들었다. 몇 해 전 샤무드라는 소재로 된 쇼파가 유행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부드러운 촉감에 반해 우리도 집에 샤무드 쇼파를 들였다. 옆지기의 생일 선물 겸 구매한 쇼파는 완연한 봄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 여름 더위와 가을을 싸늘함에도 안락했던 쇼파는 겨울이 되자 얼음장 같이 차가워졌다. 소재의 특성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겨울의 샤무드 쇼파는 포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거실 바닥까지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보니 겨울의 우리 집은 살풋 놀러온 온기도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더위도 힘들어하지만 추위에도 약한 나는 쇼파가 내뿜는 냉기에 더 이상 놀라기 싫어 포근한 뜨개 매트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당장 실가게로 달려가 제일 포근한 실을 구매하고 뜨는 내내 지루하지 않을 무늬를 구상했다. 그렇게 시작한 뜨개질은 겨울 지나 눈이 녹는 봄, 태양도 더워하는 여름, 풍요로운 가을을 지나 다시 입김 바스라지는 겨울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내가 여태까지 떠 본 모든 작품(작품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일 퀄리티는 아니지만 내 정성이 들어갔으니 적어도 나 하나 정도는 그것들을 작품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중 가장 크고 오래 걸렸다. 크기도 크지만 사실 겨울이 지나 다시 쇼파가 포근해지니까 얼른 떠서 완성 해야 겠단 생각이 안들어 꽤나 쉬엄 쉬엄 떴다. 여름 쯤에는 부피가 큰 편물을 끌어 안고 뜨개질 할 자신이 없어서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생업이 바빠 몇날 며칠 먼지 앉도록 내버려 둔 적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 완성 시켜 다음 해 겨울부턴 쇼파 위에서 제 역할을 다 할수 있게 만들어냈다.
지난 4월부터 삶이 참 우중충 했다. 나만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발전해 결국은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디가 바닥인지도 모르게 가라 앉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이 부질없이 느껴지고 나아갈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삶의 채워가는 주위의 사람들과 다르게, 나의 시간도 삶도 멈춰 있는 기분이었다. 늪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다 결국 내가 살아있는게 문제라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내가 병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쳤고 힘들었고 그래서 병이 들었다. 나의 삶은 가을의 산록처럼 화려했었다. 노랫말 처럼 내가 가지 못할 길은 없었고, 내가 먹지 못할 와인은 없었다. 무엇이든 주어진 일에 감사할 줄 알았었고, 문제를 헤쳐나갈 힘이 있었었다. 다시 내 삶을 알록달록하게 색칠하고 싶어졌다. 병든 것은 고치면 되고, 다친 곳은 치료하면 된다. 이 짧은 문장을 깨닫기까지 수 개월이 걸렸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 살았던 나에겐 영겁의 시간과 다를바 없었다. 멈췄던 시계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건전지를 갈아준다. 다 써버린 크레파스도 새로 산다. 이제 나는 내 삶을 다시 형형의 색들로 채워보려 한다. 힘들면 잠시 멈춰도 좋고, 일이 많아 나를 잠시 돌보지 못하는 시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사계절을 모두 들여 매트 한 장을 완성해 냈듯이, 내 삶도 언젠간 완성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