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기록] 소란스러운 가을비처럼 '개강'을 준비한다.
무더웠던 여름이 언제였냐는 듯이 온 몸에 서늘한 바람이 감겨든다. 한 낮의 태양 빛은 여전히 뜨겁지만 여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땀방울이 맺히던 여름 날을 기억하는 손은 산책을 위해 얼음물을 챙겨들었다. 하지만 가을날의 산책에는 얼음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가운 햇살도 시원한 공기 속에선 금새 숨이 죽는 날이었다. 산책로 옆 개울물에는 가을 옷을 입은 오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낮잠을 자고, 금계국은 어느새 온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득 담고 가을 바람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늘 다니던 길도 날씨가 좋으니 처음 만난 길 처럼 걸음 걸음마다 새롭고 즐거웠다. 삼십 여 분의 짧은 산책이었지만 여름이었다면 상상 못할 뽀송한 몸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제서야 가을이 왔구나 했다. 여름 내 크기를 무럭 무럭 키워온 나뭇잎들은 길고양이의 낮잠을 방해하는 가을 볕을 가리기 위한 것일테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은 고추잠자리들의 놀이터가 되기 위함이리라.
가을이 자신이 왔음을 온 동네에 알리고 싶었는지 가을비가 요란스럽게도 왔다. 축축한 여름비보다 훨씬 가볍고 높은 음을 연주하는 가을비는 온 종일 내리며 즐거운 합주를 이어나갔다. 운동회가 열리는 초등학교 운동울려퍼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수확을 앞둔 농부들의 즐거운 비명소리 같은 가을의 빗소리는 나에겐 '개강'의 소리였다. 가을은 개강의 계절이다. 친구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 추억 속의 단어가 된 '개강'은 나에게만큼은 아직까지도 현역이다. 일년이면 두번 씩 맞이하는 '개강'이라 이제 더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 여겼지만, 이번 개강은 어제오늘 내린 가을비 만큼 소란스럽고 신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번 학기부터는 2년간의 비대면 수업에서 벗어나 전면 대면 강의가 이루어진다. 2년 간 멈추었던 교정의 시계바늘이 다시 돌아간다니 꿈만 같다. 아무리 매일 화상으로 얼굴을 마주한다 하여도, 같은 공기 속에서 머물면서 만들어낸 동지애와는 결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번 학기에 열리는 강좌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건 오롯이 나를 위해 열린 수업이라는 오만하고 자기애 넘치는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강의 주제에 맞춰 예습도 하고 논문도 찾아보는 나름의 준비까지 마쳤다. 교수님께 가르침을 얻고 학우들과 함께 나아갈 2022년도 2학기가 매우 기대되는 바이다. 더욱이 이번 학기에는 교내 아르바이트(?)도 예정되어 있다. 간단한 사무 보조 업무이지만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이 또한 기대된다. 하루 종일 내린 빗방울의 타악기 소리만큼이나 기대된다는 말만 가득하다.
학교에서의 생활을 그리며 동절기용 가디건을 준비한다. 2학기에 벌어질 많은 일들을 생각나게 하는 '합사실'을 구매했다. 하늘색, 파란색, 보라색, 흰색 등 여러 색의 실이 모여 하나의 실이 만들어졌다. 한 코를 뜨려면 이 여러 색의 실을 한 번에 걸어내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 일이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한 개의 낱실이라도 놓치면 편물이 망가질까봐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손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샌가 한 번에 여러 줄을 걸어 내는 일은 수월해졌고, 어쩌다 낱실 한 줄을 놓치더라도 다음 코에서 제대로 모든 실을 걸어 준다면 편물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의 2학기도 이럴것이다. 시작 즈음에는 2년만에 대면으로 만나는 여러 인간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고, 처음 듣는 강의가 쏟아 내는 지식에 빠져 허우적 댈 수도 있다. 오랜만에 하는 사무 업무에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테지만 결국 다 잘 될 것이다. 여러 색의 실이 모여 어여쁜 가디건이 되어가듯이 나의 한 학기가 마무리 될 것이다. 벌써부터 완성될 가디건이 기대되고, 종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