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떡집에서 일한다. 벌써 만 6년째로 이번 추석이 떡집에서 맞는 7번째 추석이다. 구정과 추석은 모두 떡집 대목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추석이 조금 더 힘들다. 구정에 파는 떡국떡에는 옵션이 없다. 옵션이라고 해봤자 작은 것, 큰 것 두 가지 뿐이다. 그러나 추석은 옵션이 너무나도 다양하다. 일단 나오는 송편의 가짓수만 해도 '깨송편', '기피송편', '콩송편', '밤송편', '모시송편' 5가지이다. 여기에 각 송편마다 나오는 색 종류가 더해진다. '깨송편'은 흰색, 쑥색, 호박색, 홍국쌀색, 흑미색 이렇게 다섯가지이고, 기피송편은 흰색, 녹차색, 치자색 이렇게 3가지로 나온다. 그리고 방문하는 손님들은 주어진 옵션에서 동일한 선택지를 고르는 경우가 없다. "깨송편은 흰색으로만, 기피송편은 3가지 색 다 주시는데 노란색을 더 많이 주시고, 마지막으로 밤송편 조금 넣어주세요", "전부 다 골고루 넣어주세요", "기피 송편 빼고 다 주시는데 깨송편은 흰색과 쑥색만 넣어주세요" 같은 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온다. 그러면 이제 추석 게임 lv.7 시작이다.
제일 첫 파트인 송편 찜 파트에선 얼굴이 익도록 찜기에 송편을 올린다. 모든 종류의 송편을 한 시루 씩만 쪄내도 11개의 시루가 필요하다. 11번째 시루를 내놓기 무섭게 떨어진 송편 종류가 울려 퍼지고 다시 찜기에 시루가 올려진다. 두 번 째 파트는 위에서 언급한 주문 파트이다. 두 번 째 파트와 세 번 째 파트인 담기 파트는 동시에 움직이게 된다. 주문 받음과 동시에 담기 파트에선 주문 내용에 해당하는 송편을 담아낸다. 주문 파트는 목청이 좋아야 하고, 담기 파트는 기억력과 순발력이 좋아야 한다. 마지막은 계산 파트이다. 손님들이 고른 송편과 다른 여러 떡의 가격을 계산하고 식혜나 유과, 산자 등을 추가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추석 당일에는 평상시에 나오지 않는 떡이 나오기도 하고, 평소에 나오던 떡이라도 제사상에 올리는 사이즈로 크게 나와 가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주의 해야 한다. 계산 도중 추가되는 품목 역시 빼먹지 말고 계산해야 한다.
위에 언급한 일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송편은 송편이고 다른 떡도 준비 해야 한다. 색색 고운 바람떡도 가득 만들고, 고소한 향이 일품인 인절미도 큼직하게 썰어 둔다. 하나 하나 뚝딱뚝딱 만들고 보기 좋게 포장해서 진열한다. 게임이 진행 되는 도중이라도 미리 주문해 둔 떡을 찾으러 오신분에게 미리 만들어 둔 떡을 찾아드리기도 해야 하고, 선물용 떡을 찾으시는 분을 위해 선물 포장을 하기도 해야 한다. 마치 본 게임 중간 중간 들어 있는 미니 게임 같은 느낌이다.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문 밖을 나서면 게임 클리어다. 사실 이 게임의 유저가 판매자인지 손님인지 모를 정도로 추석 장사는 정신이 없다.
레벨이 올라갈 수록 게임은 어려워 진다. 매 년 맞이하는 추석도 해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떡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손님이 늘어난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우리 손주가 좋아하는 떡으로 줘봐" 라는 말에 무슨 송편을 추천해 드려야 할까?저는 지금 할머니도 처음 뵙고, 손주분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걸요. 이런 비슷한 난이도로는 "우리집 제사상에 무슨 떡을 올리냐?"가 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스무고개를 통해 어느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손주분이 달달한걸 좋아하냐, 콩송편처럼 구수한걸 좋아하냐는 몇 마디 이야기를 통해 쉽게 결제까지 마무리 할 수 있다. 제일 어렵고 힘든 질문은 "쑥이 아니라 색소 아니야? 색이 왜이렇게 짙어?" 라고 하시면 대답할 말이 생각이 안난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제일 좋은 쑥을 가득 넣어 입 근처에만 가져가도 쑥 향이 넘쳐나는 떡을 보고 색소를 사용한 것이냐는 말을 들으면 게임을 꺼버리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두가 풍요로운 한가위를 맞이하여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명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달래며 다시 게임에 몰입해 본다. 아직 오늘의 게임 스테이지는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