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유로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배운 한국어를 꼽아보라 하면 '빨리빨리'라는 말은 꽤나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 것이다. 음식도 빨리 빨리, 업무도 빨리 빨리, 노는 것도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인의 삶의 속도에 익숙해진다면 고국의 천천히 삶에 다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소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뜨개질은 이런 빨리빨리 민족에게 아주 고역일 수 있다. 잠들기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집 앞으로 배달된다는 구호를 내세운 기업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의류 시장 역시 새벽배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저녁에 내일 입을 옷을 구매하면 다음날 아침에 입고 출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이러한 빨리빨리의 편리함을 누리고 살고 있다. 하지만 뜨개질은 실을 고르고 도안을 고르는데만 이미 며칠이 걸린다. 직접 가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면 새벽배송이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는 실을 배송 받는 시간이 또 걸린다. 대용량의 콘사를 구비했다면 실을 합사하는데 또 한나절이 걸리고, 이 실의 게이지를 내서 내 체형에 맞게 도안을 수정하는데 수 시간이 걸린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미 기운이 빨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뜨개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코를 잡는 일만 해도 과장 조금 보태서 반나절은 걸린다. 나처럼 숫자 세는 일을 영 서툴러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반나절이 걸리는 일이다. 스웨터처럼 100코 넘게시작코를 잡아야 하는 편물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나, 둘, 셋... 팔십오, 팔십사, 팔십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 된다. 한번 잘못 세면 처음부터 다시 세야 하니 숫자세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기 일수다.
겨우 제대로 시작코를 잡고 나면 이제 무한 뜨개질의 시작이다. 100코를 200단 정도만 떠올리면 된다. 물론 그 중간 중간 무늬를 넣기도 하고, 코를 줄이기도 하고 늘리기도 해야 하니 시간은 배로 걸린다. 아. 이렇게 뜬 편물은 한 장 더 떠야 앞과 뒷판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양쪽 소매도 만들어야 한다. 수십만코를 떠내려가는 수십만개의 시간이 더해져야 옷 한벌이 완성된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뜨개해서 옷 만들어 입는 것을 더 즐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시간을 오롯이 사용하는 그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시간의 흐름 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조차 모르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집중해서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 있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물론 하루에 대부분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나도 바쁜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흘러가는 줄도 모르게 보낸다. 하지만 그 틈틈이 나를 위해 온전히 사용하는 그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위해 뜨개질을 하는 것이다.
한 코를 뜨면서 째깍, 한 단을 뜨면서 또 째깍. 시간과 내가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즐기게 되면 더이상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고까워 하거나 애닳아 하지 않게 된다. 모두에게 주어진 그 똑같은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 나는 느리게 느리게 흘러가는 뜨개질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