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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Oct 05. 2022

산책길에서 친구를 만들었다



 요즘 여러 이유로 산책을 많이 하고 있다. 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이 짧은 가을을 마음껏 느끼기 위해서라도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보단 두 발로 걸어다니고 있다. 또한 내 건강상의 문제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개선 가능하다. 정신적인 문제, 신체적인 문제 모두 말이다. 뼛속까지 문과적 사고만 하는 나로서는 걷기의 생물학적, 화학적 효과에 대해 논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햇살 받으며 걸은 날에는 조금 덜 우울하고 조금 더 잘 잔다고 이야기 할 뿐이다. 욱이 최근에는 산책로를 꼭 나가야 할 이유도 생겼다.


 하루에 만 보를 걷는 것을 목표 삼아 걷는다. 만 보를 걷는 날도 있고, 걷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최대한 많이 걸어보려 노력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 걸어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산책로도 열심히 이용하고 있다. 동네에 산책로가 아주 잘 조성되어 있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좀 더 도회적인 분위기의 산책로와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긴 하천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 중 주로 하천변을 따라 걷는 코스를 택하는데, 이 편이 사람이 더 적을 뿐더러 새소리 물소리를 양껏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을 따라 남으로 내려 가는 코스 중 중간 지역은 왼쪽으로는 물길, 오른쪽으론 산이 있어서 좀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난다. 산책로 곳곳에 고라니를 위한 통로가 마련되어 있고, 산에서는 꿩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이 코스가 한때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였다. 하지만 산책로 입구까지 가는 길이 고가도로 밑을 지나고, 8차선 대로 옆을 따라 걸어야 한다. 잠시 뿐이지만 차에서 나오는 소음과 매연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다른 코스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시작되는 산책로 코스는 아주 한적하다. 이 길은 원래 자전거 종주길의 일부로 산책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길 왼편으로는 조그만 하천이 좀 더 넓은 폭으로 변하며 강이라 불릴만한 사이즈가 되어 콸콸 흘러내려가고 있고, 우측으로는 논밭과 간혹 보이는 창고 이외에는 탁 트여 있다. 사람도 차도 없어 한적함을 느끼기에는 최적의 코스이지만 이 길 역시 나의 최애 코스에는 들지 못했다. 왕복 3시간 걸리는 코스인데다가 가는 도중 가로수가 없어 계속 땡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요즘 하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산책로를 가장 즐겨 찾고 있다. 적당히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에 적당히 사람들이 적다. 가는 길이 험난하지 않고, 코스 자체의 길이도 왕복 한시간 정도이다. 다른 산책 코스의 단점을 다 상쇄해 선택한 이 코스를 처음 갔던 날에는 특별한 장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산책로의 진정한 매력은 두번 째 산책날에 발견했다. 바로 산책로 끝자락에 터를 잡고 사는 노란 얼룩 고양이이다.


 처음 이 친구를 만난 날에 그(혹은 그녀)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적게 다녀도 산책로인데, 그 한복판에서 배를 까고 누워 자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혹여나 내 발걸음에 놀라 깨지 않게 살금 살금 그(혹은 그녀)의 옆을 지나쳤다. 고양이 안깨우고 지나가기 미션을 완수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내 뒷통수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야옹~, 앵~" 연달아 두 번 날아온 총성에 나는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혹은 그녀)에게 다가가니 늘어지게 자던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겼다. 그 위풍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포즈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 그(혹은 그녀)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 얼마나 치명적이란 말인가.

언제 만나도 냅다 바닥에 누워버리는 친구

 이후 나는 그(혹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라도 산책을 나간다. 아무리 귀찮아도 그(혹은 그녀)를 볼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준비를 한다. 산책 필수 준비물은 운동화도 운동복도 아닌 그(혹은 그녀)에게 줄 간식이다. 간식을 두둑히 넣은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다. 길 끝에서 언제나 날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향해 발걸음은 내딛는다. 오늘도 나는 친구를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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