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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Oct 07. 2022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그렇지만 나도 잘났어



어린 시절 나는 나에게 주어진 탤런트가 참으로 특별하다고 여겼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치뤄진 전교생 규모의 글짓기 대회에저학년 중 유일하게 상장을 받았다. 장려상이었다. 6.25에 대한 글짓기 대회였다. 내가 아는 모든 사실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조차 스스로 모르던 꼬맹이는 짝꿍에게 우는 모습을 들킬까봐 새어 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계속 글을 써내려 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길고 매끈한 연필을 손에 쥐고 한 자 한 자 눌러 쓰던 내 글을 어느샌가 다가온 담임 선생님께서 슥 보시더니 이내 가져가시어 천천히, 자세히 읽으셨다. 그리곤 내게 "이거 다 쓰면 선생님한테 바로 가져오렴"이라고 나즈막히 말씀하셨다. 왜 나에게만 이런 말을 하셨는지, 왜 내 글만 가져가서 읽으신건지 참 어려웠다. 한 반에 있는 40여 명의 학생들도 많다고 여기던 8살짜리 꼬맹이에겐 천여 명 중 3등 했다는 사실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학우들 앞에 나아가 상을 받아야 하는 사실이 창피하고 간질간질 했을 뿐이다.


 이후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글 잘쓰는 아이였다. 글짓기 대회가 있다 하면 대부분 대상을 차지했고, 간혹 은상이나 장려상을 받았다.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못받은 적은 없다. 대학 재학 중, 교내 신춘문예에서도 시나리오부분 대상을 차지 했을 땐 내게 글쓰는 재주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연극과나 국문과 학생들을 제치고 시나리오 부문 대상이라는 영예를 거머 쥐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뜨개질을 하면서도 나는 늘 특별한 사람이었다. 학창시절엔 한 반에 몇 안되는 '뜨개질을 할 줄 아는 애' 였고 스무살 넘어 본격적으로 뜨개질을 취미로 갖게 된 후에도 여전히 특이하고 특별한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주위 친구이나 지인 중 뜨개를 취미로 삼은 사람은 없었고 그들은 내가 뜨개질 하는 것을 멋있고 신기하게 여기었다. 직접 만든  가방을 들고 직접 만든 조끼를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며 나의 손재주를 부러워했다. 내게 뜨개를 배워보려 해도 곧 자신들이 손재주가 영 없음을 깨달았고, 나는 더욱 우쭐해졌다.

 



 인터넷 세상에 눈을 뜨면서 내 '잘남'은 더 이상 '잘남'이 아니게 되었다. 브런치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넘쳐났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는 뜨개질을 잘하는 사람이 차고 흘렀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한없이 작아졌다. 내 특별함이 사라지는 기분에 휩쌓였다.


 나의 특별함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실력을 부러워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한다. 내가 그들의 실력과 노력을 인정하는 순간 내 세상이 다시 오색찬란해졌다. 그들의 실력에 주눅들기보단 나와 그들의 열정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매일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도, 매일 뜨개질을 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도 모두가 멋지고 값진 시간이다.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내가 보낸 시간과 그들의 시간이 모두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실력이 아닌 행복에 초점을 맞추자 나의 특별함이 다시 차올랐다. 나는 글을 쓰며 즐겁고, 뜨개질을 하면서 여유를 만끽한다.


 목적과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목적을 잊고 결과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잠시 잊었다. 이 진리를 명심하며 글을 쓰고 뜨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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