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세영 Oct 10. 2022

손뜨개 목도리를 선물하는 일.

수 만 개의 시간을 선물 하는 일



가을비가 오고 나더니 날이 부쩍 추워졌다. 부쩍 추워진 공기에 짧은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피부에 와 닿는다.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러하다. 여름에는 샤워 후 딱히 로션을 챙겨 바르지 않아도 몸과 얼굴 모두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피부 위에 로션이나 하다 못해 스킨이라도 한 겹 올라가면 찝찝한 느낌이 들곤 했다. 요 며칠새 샤워 후 피부에 무언가를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버석버석 마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귀찮음에 로션 바르기를 미루고 있던 차였다. 무의식중에 정강이를 긁다 하얀 첫눈이 내 다리에 내리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여름 내 먼지 앉도록 내버려 두었던 로션을 다급히 꺼내 들었다. 디로션을 듬뿍 짜 다리에 발라 응급치를 마쳤다.


가을과 겨울은 뜨개의 계절이다. 실과 바늘만 있으면 되기에 사계절을 가리지 않는 취미이긴 하나 무릇 뜨개란 눈이 펑펑 오는 날 따뜻한 실내에서 김오르는 핫초코 한 잔을 곁에 두고 느긋이 하는게 제맛 아니겠는가. 바늘에 걸린 편물이 "나 먼저 완성 시켜주세요"하며 내게 눈총을 보내고 사다둔 실이 창고에서 조내감을 내뿜지만 애써 무시하고 새로운 뜨개거리를 찾아 헤맨다. 가디건을 뜨고 있으니 이번엔 스웨터를 떠볼까. 아니면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담요을 하나 더 떠볼까. 실 색이 참 고운데 한 뭉치 사둘까. 정답도 없고 끝도 없는 고민 속을 헤메다 목도리에 눈길이 닿았다.


목도리.

 뜨개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문으로 접했던 것이 바로 이 목도리 일 것이다. 목도리는 겉뜨기와 안뜨기만 할 줄 알아도 뜰 수 있고, 조금 더 기술을 넣는다 하더라도 같은 기법만으로 시작과 끝을 맺을 수 있기에 뜨개 초심자의 연습용으로 아주 적합하다. 요즘은 얇은 실로 뜨는 민무늬의 목도리가 유행인듯 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쁘띠 목도리가 유행이었다. 겉뜨기와 안뜨기만 반복하면 되는 고무뜨기로 60cm가량만 뜨면 완성되는 쁘띠 목도리는 실 한 볼로 완성 시킬 수 있어 뜨개 유행에 한 몫 했었다. 당시 카페에 가면 이 쁘띠 목도리를 뜨는 이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었다. 두어 시간의 내 할일을 마치고 그들을 보면 짧았던 편물이 어느새 완성 직전의 길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내가 뜨개질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주위에서 "목도리 하나만 떠 줘"라고 한다. 두어 시간이면 완성되는 이런 쁘띠 목도리가 유행한 이후 이런 말을 더욱 자주 듣게 되었고, 결국  몇몇 주위사람들의 부탁을 듣고 떠준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속도나 내가 원하는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꾸역꾸역 바늘을 움직였다. 그리고 나의 손을 떠난 뜨개 목도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혹은 방치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의 취미가 그들의 눈에 신기할 수 있지만, 내 취미의 결과물을 쉬이 얻으려는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쁘띠 목도리를 뜨는 '고작' 두세시간 남짓이 아닌 것이다. 받는 이를 생각하며 실의 두께와 촉감 그리고 색을 고르고, 어떤 모양이 잘 어울릴지 고민해야 한다. 이 정도 폭이 잘 맞을지 생각해야 하고, 어느 정도 길이로 떠야 편히 사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역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수 백, 수 천, 수 만번의 바느질을 하는 것이다.


작은 목도리 하나에도 이런 정성이 들어갔음을 받는 이는 쉬이 짐작하지 못하리라. 기꺼이 그대에게 선물하는 마음을 쉬이 여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