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세영 Oct 03. 2022

아침형 인간은 이렇게 삽니다.

불타는 밤을 보내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떡집의 하루는 일찍 시작한다. 주문량에 따라 출근시간이 유동적인 편이긴 하나 보통 7시 전에 출근한다. 가게에 도착하면 나보다도 훨씬 먼저 출근한 기사님이 쪄놓은 떡이 가득 있다. 이 떡들을 규격에 맞게 썰고 담아 포장하는 것이 나의 주 업무이다. 성질머리가 급한만큼 손도 빠른 편이라 주문이 많지 않은 날이면 8시 반이면 포장 업무가 다 끝난다.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와도 9시이다. 이제서야 같은 건물에 위치한 여러 영업장이 문을 열기 시작한다. 병원도 9시 오픈, 약국도 9시 오픈, 은행도 9시에 오픈한다. 우리 떡집은 중앙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위치 하고 있어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건물에 방문한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러 떡을 사가곤 한다.  말은 즉 9시는 되어야 손님이 몰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오면 판매 업무가 시작된다. 매장에 진열된 떡을 판매하면서 커피도 팔고 떡주문도 받는다.


  아. 우리 떡집에는 꽤나 크고 좋은 커피 머신이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옆지기가 본인이 먹을 요량으로 샀다는 것이 우리 끼리의 정설로 통하고 있다.  떡집 근처에 커피 전문점이 많은 편이라 커피 판매량이 많지는 않다. 오전시간에 같은 건물 병원의 간호사들이 사가는 것과 오후에 방문하는 몇몇의 커피 단골 손님 외에는 판매가 전무하다고 봐도 된다. 그래도 떡집 식구들이 먹은 양만 해도 머신값은 뽕(?)뽑았다고 생각 들 정도로 잘 사용했다. 20대 초반에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을 꽤 오래 한 터라 에스프레소를 꽤나 잘 내리는 편이다. 옆지기가 내리면 같은 원두, 같은 머신을 사용해도 산미가 강해진다. 커피를 전문적으로 배우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덕분에 모든 식구들의 커피는 내 몫이 되었지만 정작 나는 카페인에도 예민해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깨어 있을 일이 없으니 커피를 즐기지 못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


 떡 주문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종류를 정하고, 양을 정하고 어떻게 잘라 포장할지 정해야 한다. 떡마다 주문 받는 요령이 다 달라 처음 일을 배울때는 어렵기도 했다. 모든 떡 주문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요소는 바로 픽업시간이다. 주문 시간에 맞춰 떡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일의 순서가 달라질 수 있어 손님들의 픽업시간은 주문 받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간혹 이 픽업시간으로 인해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손님들이 새벽 일찍 필요하다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몇시에 문을 여냐고 물어본다. 그럼 나는 또 다른 질문으로 답을 한다. "몇시에 필요하신가요?" 그러면 대부분의 손님이 '오전 8시'라고 대답한다. '오전 8시'면 우리에겐 새벽이 아니다. 그제서야 나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시간이면 떡이 대부분 다 나와요. 저희 기사님은 새벽 4시면 출근하시거든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손님들 상대로 우쭐거리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떠하랴. 원래 아침형 인간은 이런 점을  자랑하는 낙으로 사는 것이다




 나도 올빼미였던 적이 있다. 대학시절 연극을 복수전공하며 밤을 새워 연습하기 일수였다. 그 때는 밤을 새워 연습을 해도, 쪽잠을 자는 생활을 지속해도 별로 힘들지 않았기에 당연히 내가 올빼미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연극이 좋고 열정이 넘쳤을 뿐이다. 훗날의 건강을 갈아 넣는 생활을 하는 것인줄은 그 당시에는 몰랐었다.


 그러다 교환학생을 가서 내가 아침형 인간임을 알게 되었다. 연극 연습이 없는 중국서의 생활은 오후 10시면 마감되었고 오전 6시면 시작되었다. 해도 뜨지 않은 아침 6시, 아직 잠을 자는 룸메이트가 깨지 않게 조용히 준비를 마치고 기숙사를 나온다. 고요한 교정을 지나 학교 뒤뜰과 연결된 하천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아침해가 머리 위로 떠오른다. 조용한 공원에는 간간히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북경의 시끄러운 차소리도 저 멀리의 공기중으로 사라진다. 한참 여유를 부리다 식당에 들러 요우티아오를 사 들고 교실 들어가서 이전 수업 내용을 복습하면 학우들이 하나 둘 등교를 시작한다. 이때 나는 내가 아침형인간임을 깨닫았다. 물론 전날 술을 왕창 마신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날도 었지만 교환학생으로 나가 있던 시간 중 대부분 아침형 인간으로 지냈다.


 한국돌아오자마자 떡집에서 일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침보다 좀 더 이른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했지 힘들진 않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간만의 약속으로 밤 늦은 시간까지 어있는것이 더 힘들다. 아침형 인간이 되면서 저절로 유흥과는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원래도 재미없는 인간이지만 더 재미 없어 보일지 모른다.근데 난 나름의 재미가 있다. 남들은 저녁 먹고 여유를 부리거나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는 그 시간에 나는 벌써 잠 들 준비를 한다. 깨끗이 환기 된 방안 공기에 편백향의 룸스프레이를 살짝 뿌린다. 노란 수면등 불빛에 의지해 읽어나가는 책도 재미있고 가끔 자기전 마시는 초저녁 맥주 맛은 여전히 달콤씁쓸하다. 새벽 안개에 가로등 불빛이 흐려지는 모습을 보며 출근하는 시간은 고요하다. 옆지기가 운전하는 동안 나는 조용하게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살며시 명상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막상 써 놓고 나니 정말 더 재미 없어 보이는 삶이다.  그래도 화려한 파티는 없지만 속 편한 시골밥상 같은 일상이다.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작가의 이전글 지구력을 키우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