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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Sep 28. 2022

지구력을 키우자



학창시절에 경헙했던 많은 행사 중 가장 참여하기 싫었던 날은 단연코 체력장 날이다. 회색의 체육복이 땀에 젖어 짙은 회색이 되는 것이 창피했던 땀쟁이 사춘기 소녀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근력, 심폐지구력, 정신력이 모두 뒤떨어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잘 하던 유연성 검사가 끝나면 최악과 지옥이 공존했다. 철봉에 메달리는 건 0초 컷, 50m 달리기는 누구와 달려도 꼴찌를 맡았다. 멀리뛰기는 엉덩방아 안 찧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윗몸일으키기는 겨우 하나 하고 누워서 헉헉 거렸다. 앞선 종목도 다 못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물리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겨웠던 종목은 바로 1400m 장거리 달리기였다. 학교 운동장이 작은 편이라 10바퀴 정도를 돌았어야 하는데, 2바퀴 정도 돌면 눈 앞이 핑핑 돌고 호흡이 불가능해져서 뜀박질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는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다. 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 학우들을 향해 힘내라는 말을 건네며 그렇게 천천히 걸었다. 걸어서라도 완주를 했다면 성취감이라도 얻었을테지만 나는 완주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도 마지막까지 포기 하지 않은 학우가 결승선을 넘어 서면 선생님께 가서 저는 포기한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체력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록도 성취감도 없이 학창시절을 마무리 했다.


20대 이후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면서도 운동을 통한 성취나 지구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지는 않았다. 연한 결과였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오롯이 체중계가 나타낼 숫자가 어제보다 줄어들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힘겹게 운동을 했는데 왜 체중이 그대로냐고 좌절하고 분노하는 날이 더 많았기에 동 꽤나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을 붙이지 못했다. 억지로 하는 운동에 큰 효과를 기대해선 안됬다. 오히려 매일 매일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만 늘어났다.


  어느날 문뜩 내 인생에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하는 것도, 뜨개질을 하는 것도 그 무엇 하나 끈질기게 해내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까지 다니고 뜨개지을 취미 삼은지 10여년이 되었는데 왜 이런말을 하는지 의문일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것에서 벗어나 본질로 들어가보면 이해 될 것이다. 나는 공부하는 것이 좋다. 책을 보며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것도 좋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즐겁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하나의 문제에 끝까지 파고들기 보다 문제를 찾아 가면서 발견하는 새로운 지식으로 방향이 계속 틀어진다. 쌓인 지식은 많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해결한 문제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결책이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넓고 깊은 지식의 바다에서 서로 다른 두 지식이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은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분야에서 고개를 내미는 각각의 문제를 발견 할 뿐이다.


 뜨개질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뜨개질을 좋아하지만 하나를 완성 시키기 전에 다른 뜨개질을 또 시작하곤 한다. 지금도 내가 벌여놓은 뜨개질거리만 해도 서너 개는 된다. 코만 잡아둔 것도 있고, 몸통 절반 정도 떠놓고 먼지 앉게 방치한 것도 있고, 90%이상 작업해서 이제 소매와 목둘레만 뜨면 되는 상황인데도 완성을 못시키고 있는 것도 있다. 조금만 더 하면 완성 시켜서 입고 착용할  수 있는데, 이 마지막 '조금'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또 다른 것이 뜨고 싶어서 이것 저것 검색해보고 저장한다. 가을이 되니 담요도 뜨고 싶고, 조금 큼직한 가방도 하나 만들어 들고 다니고 싶다. 고운 색과 부드러운 감촉을 가진 실을 보니 옆지기와 목도리를 떠서 나눠 메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렇게 가다가는 실에 깔려 죽었다는 기사로 나를 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참아본다.


 완성 시켜야 하고,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지금 내게는 어느 하나 이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건 조급함과는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무엇 하나 완성 시키지 못하는 삶이라니. 이건 필히 지구력의 문제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완주해 내는 것을 이제껏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내게 미션이 주어졌다. 올 해가 100일 가량 남은 이 시점이 미션을 시작하기 아주 좋은 시기이다. 지금 정한 논문 주제에만 집중하는 것. 그리고 지금 시작한 뜨개질 거리를 모두 완성 시키는 것.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다'는 거창한 표제를 내걸로 지키려는 목표로는 조금 미약하지만 올 해 마지막 목표를 향해 뜀걸음을 시작해 본다. 지쳐서 느려질 수도 있지만 마지막 1도를 위해 결코 이번엔 멈추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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