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지구] 오래된 청바지의 다음 목적지

옷을 먹는 소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by 섬세영

최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노트북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예상치 못하게 코딩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하는 일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 시작은 했으나 영 이해가 되지 않아 끙끙거리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스터디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취향이 담긴 노트북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노트북을 담아오는 파우치나 가방을 보면 주인과 노트북이 참 닮아 있음을 느낀다. 털털한 성격의 언니는 아무 가방이나 노트북을 그냥 담아오곤 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선배의 노트북에는 아기자기한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다. 나는 가방에 담아 오더라도 꼭 노트북 파우치에 노트북을 담은 뒤 가방에 담곤 한다. 그리고 이 노트북 파우치가 바로 오늘 글의 주제이다.

내 노트북 파우치는 청바지를 잘라 만든 것이다. 하나는 초등학교 때 부터 입던 청바지이고, 하나는 외숙모께서 입으시다 물려주신 꽤나 좋은 브랜드의 청바지이다. 두 청바지 모두 3년 이상 입지 않아서 버리려 했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입던 청바지는 20대에 체중변화를 겪으며 더이상 맞지 않게 되었을 뿐더러 십 수년을 입어 이미 낡고 헤진 상태였다. 외숙모께서 물려주신 청바지는 한때 열풍이 불었던 브랜드의 제품이다. 본인이 20대에 아껴 입던 옷이지만, 출산 후 변해버린 체형으로 더이상 입지 못하는 것이 아까워 내게 주신 것이다. 하지만 워낙 호리호리한 체구의 외숙모가 입으시던 옷이라 도저히 입을 수가 없어 묵혀 둘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 두 청바지는 가위질 당하고 바느질 당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고, 몇 년 째 내 노트북을 깨끗하게 보관해주는 용도로 요긴하게 사용 중이다.

사실 이 노트북 파우치를 만들 당시에는 큰 이유가 없었다. 단지 시험기간이었을 뿐이고, 마침 청바지가 눈에 띄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결국 내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은연중에 내가 이 청바지들을 버린다면 환경 오염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여겼었던 것이리라. 때문에 돈 몇 만원이면 쉬이 살 수 있는 노트북 파우치를 구매하지 않고 직접 재단하고 바느질 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물론 시험기간에는 빈 벽만 쳐다봐도 재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느질이라니 얼마나 재미 있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kbs 환경스페셜에서 우리가 버린 옷의 종착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우리가 단지 유행이 지났다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의 아주 저렴한 이유로 버린 수많은 옷들은 결국 제3 국가의 새로운 산이 된다. 썩지도 분해되지도 않는 인간이 만든 거대한 산 위에서 먹을 것을 찾던 소는 결국 화학 섬유를 뜯어 먹기 시작한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한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준 결코 자연적이지 않은 그 모습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후 나는 옷을 구입하는데 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다. 패스트 패션 시대에 쏟아지는 옷의 향연 속에서 옷을 구매하지 않는 일은 쉽지 않다. 견물생심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옷이란 내 몸을 보호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유행에 더욱 둔감해 질 수 있고, 새로운 옷을 구매한다면 최대한 자연 친화적 소재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내가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인지를 고려하고, 세탁만해도 옷감에서 배출 된다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서 최대한 화학섬유를 피하려 노력한다.


낡은 옷은 최대한 그 쓰임을 다 한 뒤에 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내 노트북 파우치처럼 새 활용을 하는 것도 있다. 구멍난 양말을 버릴 때에도 그냥 버리지 않고 다만 구석 구석 집안의 먼지라도 한번 쓸어 내는 용으로 사용하고 버린다.




그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구질구질하고 피곤하게 산다고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화면을 통해 본 그 버려진 옷의 산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지구는 앞으로 더이상 푸른 산과 파란 하늘이 아닌 풀이 자라지 않는 화학섬유의 산과 회색 하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나처럼 옷을 함부로 버리지 말고 바느질 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라거나 물티슈 대용으로 구멍난 티셔츠를 잘라 활용하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에 신중을 가해야 하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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