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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영 Sep 30. 2022

정신과일지2]알이즈웰, 알이즈웰




 나는 무척이나 예민한 사람이다. 그나마 비염으로 인해 후각이 좀 둔한 편이다. 하지만 고기 비린내가 역하게 느껴져 돼지고기 종류는 잘 먹지 못한다. 돈까스, 제육볶음, 깡통햄 그리고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두툼한 삼겹살까지 남들은 없어서 못먹는 고기를 나는 줘도 못먹는다. 제일 둔한 감각인 후각이 이정도이니 다른 감각 기관으로 부터 들어오는 다채로운 감각들로 늘 과부하가 걸려 있다. 옷을 살때는 아무리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도 내부 마감이 어디 하나라도 걸리적거리면 살 수 없다. 라벨을 다 떼고 입는 것은 물론이고, 라벨을 뗄 수 없는 옷을 입는 경우에는 끈런닝을 꼭 착용하거나 라벨에 의료용 종이테이프를 붙이곤한다. 심지어 끈런닝을 입을 때에는 옷의 연결 부분이 겉으로 오도록 뒤집어 입는다. 오버로크 되어 있는 그 부분이 맨 살에 닿는 느낌이 거슬려서이다. 어쩌다 불편한 옷을 입고 외출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불편해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이런 내게  잠귀가 밝아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에도 쉽게 깨버리니 창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깨는 일은 당연지사이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도 잠을 깨니 늘 얕은 잠을 잘 수밖에 없다.

 

 오감이 고루 발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눈치도 빨라서 상대의 감정에 지나치게 동화되기도 한다. 작은 감정 변화도 눈에 들어오고, 그 감정 변화가 혹시 나로 인한것이 아닌가 사서 걱정한다. 반대로 내 감정을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 역시 너무 쉽게 캐치되어 이 상황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친한 사이, 그러니까 라포가 형성 된 사람에게 받는 감정적 부담감과 라포형성이 안된 타인으로부터 겪게 되는 감정 부담이 약간 다른 형태긴 하지만, 결국 사람을 대한다는 것 자체가 내겐 큰 부담이다. 친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는 며칠동안이나 홀로 방에서 묵언수행을 해야 에너지가 돌아온다. 가게에서 불특정다수의 손님을 대하는 일은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큰 에너지소비처이다. 남들에겐 별거 아닌 구매와 판매의 그 짧은 단계에도 지쳐버린다.


  이런 예민함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인지, 마음의 병이 있어서 이렇게 예민하게 사는 것인지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고찰해 보았다. 결론은 예민한 기질은 타고 난 것이고, 이 기질을 잘 다스리지 못해 마음에 병이 생긴것이라고 났다. 이 인과 관계가 맞을수도 있고 틀릴수도 있지만 이렇게 결론 지은 이상 병을 고치기 위해선 내 기질을 잘 다스리며 살아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오감이 예민한 것을 다스리기는 힘들지만 잘 다룰 수는 있다. 지금처럼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여 미리 캐치하고 이 불편한 부분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100% 완벽하게 불편함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조금만 신경써도 일상생활에 무리 없을 정도는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감정적인 부분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킨 채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 감정을 무시한 채 사람들과 무작정 만나야 한다는 것도 안될 일이다. 우선 나는 약물의 도움을 받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주위에 알렸다. 내 병의 증상과 치료 중임을 알리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병자라는 사실에 분노, 우울, 슬픔, 짜증, 번뇌, 후회 등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뎌내고 있는데, 주위의 별거 아니라는 반응이 사실 크게 도움이 되었다. 지기는 병은 치료하면 된다 하며 내 고민을 쉬이 날려보냈고, 친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날 대했다. 주위에서 호들갑을 떨고 내가 병자라는 사실에 기반해 나를 대했더라면 오히려 더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에겐 영화 '세얼간이'의 명대사 '알이즈웰'이 필요하다. 뭐든지 잘 될 것이라 암시한다. 언젠가 이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와 여러 사람들과 편한 마음으로 교류하고 행복을 나누고 싶다. 삶은 다채롭고 향기롭고 시끄러워야 한다. 조용하고 잿빛 내 세상이 바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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