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그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을 때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부모님 두분 다 종교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강요한 적이 없어서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다양한 종교를 접하고 컸다. 교회를 다니면서 달란트를 열심히 모아 달란트 시장에서 요것 저것 사보기도 하고, 동네 뒷산 절에 가서 한참 앉아 있다 오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몸과 마음이 다 힘들던 그 시기에 천주교에 발을 딛였다.
세례를 위해 열심히 교리 공부도 하고, 미사도 드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누군가의 강요 없이 주말마다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내 열혈 종교생활은 20대 초반 그렇게 짧게 끝이 났다.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천주교라 대답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 생기면 묵주를 찾아 손에 꼭 쥔다.
이런 내가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챙기는 종교 행사일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사실 종교적 의미보다 축제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축하해야 하는 날은 맞으니 축제의 날이라 해도 그분께선 크게 노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날씨가 싸늘해지는 11월이 되면 나는 현관문에 걸어둔 리스를 바꿔 단다. 1년 동안 팬트리에 잠들어 있던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 장식품을 꺼내 후후 불어 먼지를 날린다. 작은 종도 트리 끝에 달아주고 트리 아래엔 기차도 놓아 둔다. 그렇게 우리의 겨울의 시작은 현관에서부터 티가 난다.
작년부터는 집에 작은 트리가 하나 더 생겼다. 어린 시절, 친정에는 늘 크리스마스면 천장까지 닿을 법한 커다란 트리를 만들었다. 리본을 묶어 장식한 해도 있었고, 트리 아래에 인형을 가득 채워 넣어 장식한 해도 있었다.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주실 선물만큼이나 트리 만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트리가 집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쉬어 엄마를 졸라 해가 바뀌고, 봄이 올 때까지 그대로 장식해 둔 적도 있을 정도 였으니 말이다.
이런 내게 트리는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옆지기는 트리를 아니, 크리스마스에 크게 감흥이 없는 사람이다.(종교적 이유는 아니다. 그저 각종 행사에 대한 열정이 나보다 덜 할 뿐이다) 덕분에 같이 산지 몇 해가 되었음에도 현관 장식품을 제외하고선 크게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딱히 없었다. 그러다 작년, 친구가 트리를 선물해 주었다. 요새 유행하는 자작나무 스타일 트리였다. 내 무릎 정도 오는 자그마한 사이즈였지만 가지 끝에 아롱다롱 달린 전구에 불이 켜지면 온 주변을 환히 비출만큼 존재감 넘치는 트리이다.
요즈음은 나보다 옆지기가 이 트리를 더 좋아한다. 새벽 출근 하는 우리는 전등 불을 잘 켜지 않았다. 트리를 꺼내 둔 이후 옆지기는 출근 준비하는 바쁜 아침에도 트리를 꼭 켜두었다 끄곤 한다. 저녁에도 전등을 켜도 되는데 굳이 불을 다 끄고 트리 불만 켜두곤 한다. 그러고선 그 앞에서 연신 "예쁘다"를 남발한다. 180cm에 90kg이나 되는 커다란 덩치로 자기 정강이뿐 안오는 작은 장식품 앞에서 저러고 있는 모습이 새삼 귀여워 나도 살풋 웃게된다.
이제 나에겐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기억이 하나 더 생겼다. 내년에는 좀 더 크고 멋진 트리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지금도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커다란 트리가 생기면 얼마나 좋아할지 벌써부터 눈에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