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가든 근처에서 아내가 멈춰 섰다.
“휠체어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어. 어쩌지?”
아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벌써?”
나도 놀랐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하루 동안 얼마나 걸었는지를 확인했다.
“10.5킬로미터를 걸었네!”
배터리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실제 거리는 12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휠체어가 멈춰 설 것이었다. 아주 위험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나도 다리가 제법 아팠다. 확실히 많이 걸은 모양이었다.
큰 도로답게 차가 많이 다녔다.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호텔까지 갈 수 있을까?”
아내가 걱정스레 말했다.
“배터리를 최대한 아껴 보자. 노숙할 수는 없잖아.”
내가 애써 가볍게 말했다.
“노숙이라니? 네가 밀고 가야지.”
“밀어? 휠체어를? 내가?”
“휠체어가 멈추면, 당연히 네가 밀어야지.”
“200킬로그램을 밀면서 호텔까지 가라고?”
“다른 방법이 없잖아.”
“헐!”
아내는 진지했다. ‘배터리가 꼴깍 숨넘어가는 순간, 나 역시 죽겠구나.’ 싶었다. 예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부디 배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기도했다. 어느새 사위가 어두웠다. 휠체어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택시를 타야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걸어서 호텔까지 가는 건 불가능했다. 호텔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었다.
“택시⋯, 탈 수 있을까?”
아내에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좀 불안했다. 만약 택시를 못 타면 어떡하지? 막막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일반 택시에 탑승한다는 게 가능할까, 심히 의심스러웠다. 아내도 평소 같지 않게 말을 아꼈다.
우리는 서울에서 주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다녔다. 전동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유일한 택시였다.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특별 교통수단이었다. 택시비가 매우 저렴한 건 좋은데(비용의 대부분을 서울시에서 지원한다), 태생적으로 커다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이용자에 비해 택시 대수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은 택시를 호출한 후, 하염없이 그야말로 하염없이 차를 기다려야 한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장애인은 시간 약속을 좀처럼 할 수 없다. 운이 좋으면 30여 분 안에 택시가 올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급하면 저상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도 있지만, 저상버스 또한 대수가 매우 적고 지하철 역시 아직은 장애인이 마음 놓고 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지방은 이보다 상황이 더욱 나쁘다. 저상버스가 아예 다니지 않는 지역도 많고,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려면 며칠 전에 예약해야 하는 지자체도 많다. 장애인의 이동권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택시 블랙캡은 휠체어를 타고도 탑승할 수 있다고 했다. 블랙캡은 특별 교통수단이 아닌 일반 택시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궁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캡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못 본 척하고, 지나가 버리면 안 되는데. 걱정됐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저상버스 기사들은 장애인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장애인을 번거롭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차가 멈춰 섰다. 기사가 차에서 내렸다. 휠체어를 한번 보더니 뒷좌석 문을 열었다. 뭘 어쩌려는 걸까, 궁금했고 긴장됐다. 기사가 승객이 올라타는 차 옆면에서 경사로를 잡아 뺐다. 그리고 우리에게 손짓했다. 그는 손님을 골라 태우지 않았다. 장애인 승객을 귀찮아하지 않았고, 경계하지도 않았다. 가벼운 미소를 띠운 채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그에게 특별할 것 없는 손님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있었다. 경사로의 각도가 너무 가팔랐다. 아내가 올라가지 못하자, 기사가 차 트렁크에서 경사로 하나를 더 꺼내 왔다. 그리고 원래 있던 경사로에 새 경사로를 덧붙여 주었다. 경사로의 길이가 길어진 만큼 각도가 한결 완만해졌다. 아내가 경사로를 타고 택시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이 나라! 사회적 약자를 이렇게 배려하는구나. 돈이 많다고 선진국이 되는 건 아니구나.’ 택시를 타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세 시간 넘게 덜덜 떨며 차를 기다리던 겨울밤이 떠올랐다. 오지 않는 택시 때문에 끝내 갈 수 없던 병원도 생각났다. 차가 너무 늦게 잡혀서 놓쳐 버린 기차, 입장할 수 없던 공연장 등 택시에 얽힌 사연이 한아름이었다. 애증의 마음으로 서울을 떠올렸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택시를 탈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수요자 중심의 진정한 복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건 특별 교통수단이 아니다. 저렴한 택시요금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그것이다.
차창 밖으로 런던의 밤이 흘렀다. 요금은 17파운드였다. 팁까지 20파운드(약3만 원)를 주었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후, 아내는 한참 동안이나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택시에서 흘러나오던 팝송이었다. 가수? 모른다. 제목? 모른다. 그냥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