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흘째 날이 되자 우리에게 있어 빅벤은 동네 뒷산 같았다고 할까? 아니면 매일 먹는 집밥 같았다고 할까? 아무튼 싱거운 존재가 돼 있었다. 호텔에서 트라팔가 광장까지 가기 위해서도 빅벤을 스쳐 지나가야 했고, 템스강 변을 걷다가도 고개만 들면 빅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시간 울려 퍼지는 빅벤의 종소리, 그건 차라리 빅벤의 목소리였다. 친근하고 편안한 목소리 말이다.
빅벤은 1859년에 세워진 시계탑이다. 높이가 98미터에 이른다. 시침의 길이가 2.8미터, 분침의 길이가 4.9미터인 거대한 시계가 박혀 있다. 13.5톤이 넘는 종이 매시간 울린다.
“쉬었다 갈 겸 사진이나 찍을까? 마침 빅벤도 저기 있네.”
“그러든가. 지나가는 김에.”
가로수 밑에서 쉬었다 가듯, 우리는 빅벤 아래에서 잠시 숨을 돌릴 요량이었다. 느긋하게 걸어서 빅벤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말 더 못 가? 확실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내가 물었다.
“바리케이드를 둘러쳐 놔서 더는 못 가.”
장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빅벤이 공사 중이었다. 우리가 영국에 막 도착했을 때도 공사 중이긴 했는데, 요 며칠 사이에 공사 규모가 더욱 커진 듯했다.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빅벤! 하던 대로 해. 갑자기 비싸게 굴지 마.’
머릿속에서 빅벤의 가치가 쑥 올라갔다. 집토끼보다 산토끼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았다.
런던까지 와서 빅벤을 만져보지도 못하다니! 빅벤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을 수가 없다니! 운명의 장난이 너무 심했다.
그때였다. 뎅~ 뎅~ 뎅~ 머리 위에서 빅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산다는 건 다 그래’ 하고 말하는 듯했다. 가을하늘처럼 맑고 깊은 종소리였다. 사람의 마음을 선하게 만드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아홉 시 정각이었다. 칼같이 정확한 녀석이다.
한편, 빅벤은 대대적인 보수 공사로 인해 2021년까지 타종이 중단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한국에 온 후 알았다. 나는 침묵하는 빅벤을 상상할 수 없다. 매시간 하늘과 땅을 향해 말을 쏟아내던 녀석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국회의사당이 불타오를 때에도 말하기를 쉬지 않은 녀석이었다. 노랫소리 같던 그의 나직한 음성을 어떻게 잊겠는가. 우리에게 매시간 말을 걸어 주던 그가 그립다.
“평생 들을 종소리는 영국에서 다 들었어.”
빅벤을 뒤로하고 나오며, 아내가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왜냐면, 우리는 새해 자정에 울려 퍼지는 보신각 종소리를 좀처럼 듣지 못하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늦게 자면 다음날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은 까닭에, 우리는 12월 31일에도 평소같이 일찍 잔다. 그러니까 아마 맞을 거다. 평생을 들어도 영국에서 들은 것만큼의 종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할 거다.
“그거 알아? 나, 빅벤 소리 들으면서 소원 빌었잖아. 새해 자정에 하는 것처럼.”
아내가 비밀 얘기하듯 말했다.
“도대체 언제?”
“어젯밤에. 그젯밤에도.”
“헐, 세상에!”
빅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뭐지? 쟤, 왜 나한테 소원을 비는 거야?’ 하지 않았을까? 혹시 너무 놀란 나머지 실어증에 걸려 버린 건 아닐까?
뎅~ 뎅~ 뎅~ 산다는 건 다 그래! 놀라운 일의 연속이지. 녀석의 말이 자주 떠오를 것 같다.
*
저녁10시 경,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노곤했다. 며칠 동안의 피로가 빚쟁이들처럼 사납게 몰려들었다. 누운 것까진 좋았는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인생 파노라마가 한 편의 영화가 되어 머릿속에서 상영됐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언제부턴가 하루하루를 버텨 내고 있었다.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매사에 시큰둥했다. 더 이상 가슴이 격하게 고동치지 않았고, 웃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요컨대 몸과 맘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대체 언제부터였지? 어른이 됐다고 자각하면서부터였다. 우습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아, 이제 나는 어른이 됐구나!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겠구나! 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 중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이었던 듯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세상 다 산 얼굴로 그랬다. 일단 그렇게 자각하고 나니(마음먹고 나니), 모든 일에 심드렁해져 버렸다. 한마디로 세상만사가 재미없었다. 그렇게 나는 진짜 어른이 됐고, 시큰둥한 삶, 심드렁한 삶을 살았다. 자꾸만 살 속으로 파고드는 내향성 발톱처럼, 나는 가난한 자아 속으로 침잠해 갔다.
그런데 유럽에 와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자아 속에 접어 둔 마음의 안테나를 어떻게든 길게 잡아 빼야 했다.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곧추 세워야 했다.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남이 뭐 하나, 뭘 먹나, 여긴 어딘가, 뭘 하는 곳인가⋯. 정보를 하나라도 더 수집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정신을 차려 보니, 삶의 결이 달라져 있었다. 포엠과 폼 사이에서 고민하고, 시계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돈을 내라는 운전기사의 말에 어벙한 웃음을 흘렸다. 오늘만 해도 나는 타인의 언어와 그들의 속내를 읽기 위해 애썼다. 아이처럼. 하루를 버티지 않고 즐겼다. 아이처럼. 많이 웃었고 행복했다. 아이처럼.
삶은 세상이 보내오는 모스부호로 가득 차 있다. 안테나를 길게 빼고 곧추 세워야 신호가 겨우 잡힌다. 전파를 수신하고 못하고는 전적으로 안테나의 상태에 달려 있다. 밖을 향해 뻗어 나간 안테나는 세상이 보내오는 온갖 메시지를 수신하지만, 자신을 향해 꺾여 있는 안테나는 그 무엇도 수신하지 못한다. 전파를 잡아내지 못하는 라디오만큼 재미없는 게 또 있을까?
아내도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았다. 잠꼬대를 했다. 뭐라는 거지? 저건 또 무슨 신호지? 해독해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