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잘 탈 수 있을 거야. 무사히 탈 수 있겠지? 탈 수 있으려나?’ 심란했다. 버스를 타는 건 언제나 부담스러웠다. 기사가 불친절하진 않을지, 승객들이 눈치 주진 않을지, 이래저래 걱정됐다. 영국에서처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기만을 바랐다.
N12번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기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리프트가 뒷문 쪽에서 자동으로 나왔다. 아내가 리프트를 타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문 바로 앞에 휠체어석(빈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같은 시각, 나는 앞문을 통해 버스에 올라탔다.
“두 사람이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기사에게 말했다. 그런 후 5유로(약 6,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오케이.”
기사가 까르네 두 장과 거스름돈 1유로(약 1,300원)를 주었다.
“이렇게 하세요.”
기사가 운전석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가 까르네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손이 크고 두툼한 사내였다. 운전석 옆에 있는 기계에 까르네를 집어넣었다. 곧 기계 밖으로 까르네가 튀어나왔다. 사용한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다. 표를 이용해서 지하철을 타던 예전 방법과 유사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아날로그라니!’ 신선했다. 파리가 다르게 보였다. 휠체어석까지 걸어갔다. 빈자리가 없었으므로 나는 서서 갔다.
“여긴 내 자리야. 아무도 못 앉아. 맞지?”
아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의 저상버스를 생각했다. 이름뿐인 휠체어석을 떠올렸다.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의 저상버스는 모든 게 셀프서비스다. 휠체어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접이식 의자부터 스스로 치워야 한다. 단단히 고정돼 있는 의자를 치우는 동안, 기사는 거침없이 운전해 나아간다.
만약 다른 승객이 휠체어석(접이식 좌석)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휠체어를 통로에 세우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위험하기 그지없다. 휠체어석을 항상 비워 놓는 유럽! 고마웠다.
버스가 에비뉴 에밀졸라 정류장을 출발했다(에밀졸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이다).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날씨가 무척 화창했다. 햇볕이 강했지만, 습도가 낮아서 덥지는 않았다.
“이만하면, 별 탈 없이 잘 탔지?”
“방심하기엔 아직 일러.”
아내가 깐깐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꾸준히 탔다. 우리가 내릴 때 즈음에는 버스 안이 꽤나 붐볐다. 약 15분 후, 아내가 벨을 눌렀다. 영국에서와 같이, 휠체어석 옆에 장애인 전용 벨이 있었다. 이 벨이 울릴 경우, 기사가 리프트를 내려주는 식이었다.
“벨이 안 울려!”
“뭐?”
“불도 안 들어오고 소리도 안 나.”
아내가 당황했다. 역시 방심하기에는 일렀던가 보았다. 장애인 편의 시설이 잘돼 있긴 한데, 이상하게 고장이 잦은 프랑스였다. 정류장을 지나쳐야 하나? 내려달라고 어떻게 말하지? 사람이 많은데 문 쪽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한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였다.
“내리실 건가요?”
가까이 서 있던 승객이 물었다. 허둥대며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휠체어 탄 분이 내리신대요!”
“기사님, 문 열어 주세요!”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메아리가 퍼져 나갔다. 이윽고 버스가 ‘세인 부쉬 정류장’에 도착했다. 리프트가 버스 바닥과 인도를 연결했다. 그리고 뒷문이 열렸다. 우리가 내릴 수 있도록 사람들이 비켜 주었다.
아무리 잘 만든 기계라도 고장 날 수 있다. 또 제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이라도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기계든 시스템이든, 사람의 손을 벗어날 수 없고, 결코 벗어나서도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버스 기사의 크고 두툼하던 손을 떠올렸다. 우리에게 손짓하던 승객들의 손도 떠올렸다. 파리에서 느끼는 아날로그 감성이 재밌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기계가 좀 고장 나도, 시스템의 일부가 작동하지 않아도, 큰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미더웠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며 2014년의 봄을 생각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배, 마비됐던 구조 시스템, 무력했던 나, 손 내밀어 주지 못했던 우리. 파리의 파란 하늘 밑에서 가슴이 시렸다. 인간의 선의와 자유의지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