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우리한테 왜 이래?

by 제삼열

출구로 나갔다. 드디어 프랑스 여행이 시작되는 듯해서 설렜다. 햇볕이 이마를 쨍하고 때렸다. 부지불식간에 얻어맞고 나니 머리가 띵했다. 역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바깥은 우리나라의 초여름처럼 더웠다. 우리는 입고 있던 얇은 재킷을 벗어 버렸다. 한결 홀가분했다.

파리는 런던과 사뭇 달랐다. 런던보다 활기차고 시끌벅적했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고, 사람들은 웃으며 몰려다녔다. 마치 거대한 유원지에 온 듯했다. 과연 빛과 낭만의 도시다웠다. 택시들이 역쪽으로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끝도 없이 타고 내렸다. 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택시들이었다.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차들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장애인용 택시가 따로 있었다. ‘G7 액세스’라는 택시가 바로 그것이었다. G7은 다국적 택시 회사로서 여러 종류의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택시를 호출할 수 있다. 택시 유형은 다음과 같다. 일반 택시인 G7, 친환경적인 G7 그린, 고급 택시인 G7 VIP, 크기가 큰 G7 벤, 익명의 승객과 함께 타는 G7 셰링(요금이 저렴하다),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G7 액세스(파리에 100여 대밖에 없다).


“기다리면 G7 액세스가 올까?”


아내가 말했다.


“한 대쯤은 지나가지 않겠어?”


나는 말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택시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 빨리 가야 되는데, 화장실이 급할 텐데, 초조했다. 그때였다.


“도와드릴까요?”


아주머니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행색이 몹시 추레했다. 좋지 못한 냄새가 났다.


“G7 액세스를 타고 싶어요. 휠체어 택시요.”


우리가 말했다. 뭐랄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저기 가면 있어요. 따라 오세요.”


집시가 앞장섰다.


“따라 가도 되려나?”


“G7 액세스를 아는 눈친데?”


별일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집시를 쫓아갔다. 육감이 요란스레 경종을 울려댔다. 꺼림칙했지만, 그놈의 택시를 향한 기대가 더 컸다. 바보 같았다.


“오~.”


어느새 남자 집시가 합류했다. 그가 무슨 이유에선가 감탄했다.


“조용히 해!”


여자 집시가 쏘아붙였다. 남자가 킬킬댔다. 몇 분 후 집시들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에요. 아무거나 잡아타면 되요.”


북 역의 다른 출구 앞이었다.


“아뇨. 휠체어 택시를 찾고 있어요. G7 액세스요.”


아내가 딱딱하게 말했다. 출구만 바뀌었을 뿐, 조금 전의 그곳과 다를 게 없는 곳이었다. 일반적인 택시들만 드나들고 있었다. 역시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프랑스의 치안 상태, 집시들의 횡포 따위를 떠올렸다.


“뭐? 무슨 휠체어 택시? 뭐라는 거야?”


남자 집시가 이죽거렸다.


“데려다 줬으니 돈 줘요.”


여자 집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기가 막혔다. 보기 좋게 걸려 든 셈이었다.


“동전이 없는데 어쩌지?”

“지폐밖에 없잖아.”


목소리를 낮춰 아내와 상의했다. 지폐를 주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팁이라면 몰라도, 이건 뜯기는 게 아닌가. 그들은 수고비를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돈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돈. 달라고!”


여자가 윽박질렀다.


“우리가 찾는 곳이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캐리어 좀 줘 봐요.”


남자가 캐리어 손잡이를 낚아채려 했다. 내가 힘주어 잡았다.


“도와주려고 하는데 왜 이래?”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담!”


여자가 아내 옆쪽으로 돌아갔다. 이대로 있다가는 위해를 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남자가 캐리어를 잡아당겼다. 손잡이를 놓치면 정말 큰일이었다. 옷, 휠체어 충전기 등이 모두 캐리어 안에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아내는 여자 집시와 실랑이 중이었다.


“도와주세요!”


있는 힘껏 소리쳤다. 남자가 가슴을 확 떠밀었다.


“블라블라!”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뒤 이어 호각도 울렸다. 누군가 어깨를 잡아당겼다. 아내와 나는 역 출입구 쪽으로 이끌려 갔다. 바리케이드 안쪽으로 들어간 후에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역무원과 집시들이 옥신각신했다. 역무원은 집시들을 쫓기 위해 소리쳤고, 집시들은 우리에게 다가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호각 소리를 듣고 역 안에서 다른 역무원이 달려 나왔다. 싸움이 더 거칠어졌다.


캐리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겨우 호흡이 돌아왔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고성이 오갔다. 발소리들이 어지럽게 울렸다. 눈 뜬 채 코 베일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언제 위험에 처할지 몰랐다. 우리는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남의 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낯선 세상이었다.


“괜찮아?”


아내에게 물었다.


“집시들이 너무 필사적이야.”


우리는 상황이 정리되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비록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집시들의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후볐다. 그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몸에 박혔다. 한참 후에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폭풍이 할퀴고 간 듯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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