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바람 잘 날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삶이 다채롭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하다.
'내 나이가 올해 몇 살 이더라?' 며칠 남지 않은 생일을 앞두고 근 1년 만에 내 나이를 가늠해 본다.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세는 일은 일상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누가 나의 나이를 묻고자 다가오는 일도 없어졌거니와 나는 그저 세상 속에서 노인이고 주변인들에겐 할머니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 또한 그저 누구누구의 엄마이고 할머니로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가뭄의 콩 나듯 어쩌다 나이를 물어오는 이가 있으면 선뜻 두 자릿수가 떠오르기보단 내가 태어나던 해의 네 자리 숫자가 떠오를 뿐이다. 그러면 한번 더 계산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를 잊고 사는 건 꽤 괜찮은 일이다. 많아지는 숫자의 연연하지 않으니 작년이 올해 같도 또 내년도 올해 같다. 가뜩이나 무릎엔 힘이 빠지고 여기저기 아픈 곳도 늘어가는데 굳이 나이라는 숫자까지 계산하려니 괜히 성질만 나빠지는 것 같아 숫자는 아예 잊고 살기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매년 찾아오는 생일은 잊고 살았던 숫자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려고 한다. 내가 아니라 지들도 분명 늙고 있는 딸년들 한테서 말이다.
아들 하나 얻고자 딸을 다섯이나 낳았다. 참 희한한 것은 그중 연년생 터울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죄다 3살 터울이니 시집와 근 20년을 배가 불렀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리 살았나 싶다.
자식들은 또 어찌 그리 제각각인지 단 하루도 편히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어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 본 적이 있겠는가. 잊고 지나가기 일쑤였고 계절이 지나는 것도 모를 때가 더 많았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어려운 형편에 자식들의 생일을 챙기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들 말고는 딸들의 생일은 모르고 지나쳐 버리거나 알고서도 모른 척할 때가 많았다.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다섯 명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다 보면 그렇게 1년은 또 지나가 버린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냈으면 됐지. 그 시절 어디 다들 대학까지 보내기가 쉬웠나? 생일이 뭐 대수라고 낳느라 고생은 내가 다 했구먼.'
복작거리는 삶 속에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던 시절, 깜박 잊은 것이든,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든 그렇게 보내버렸던 딸년들의 생일은 어느덧 황혼에 젖어든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으니 이걸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그래, 다들 결혼해서 (물론, 아직 미혼인 자녀들도 있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그리고 또 새로운 이들의 날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니 이 늙은 엄마이자 한때 야속했던 엄마의 생일쯤이야 쉬이 넘어가도 되지 않겠나 싶을 수도 있다 하고 이해해보려 하는데, 자고로 나도 사람인지라, 더욱이 나이가 먹어가고 나이가 먹으면 도로 애가 된다는 세상의 진리도 있지 않던가, 그러니 나 또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여럿인 자식들에게 다 똑같은 마음이 든다는 건 거짓말이다. 수많은 세월의 상황과 여건들이 영향의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내 자식들이라 해서 모두가 같은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야 두말할 필요 없이 가장 으뜸이고, 딸들 중에서도 마음이 더 가는 딸들과 덜 가는 딸들이 있기 마련이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엄마가 저런담?' 이란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 그게 내 마음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어쩌면 그렇게 나의 이 어리석음이, 조금은 서투른 엄마였던 나의 과거가 온갖 바람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장 예뻐했던 그리고 가장 믿고 있던 딸에게 잊혀가고 (아니 잊히고 싶어 하는) 엄마로서 말이다.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믿었었으니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곁에 두고 싶었었으니까, 까탈스러운 성격을 핑계로 다른 아이들을 타일러 가며 더 많이 보듬고 더 많이 애썼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 그리고 저 또한 가정을 이루고 엄마가 되면 알 수 있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나의 사랑이, 나의 애씀이, 그리고 나의 믿음이 그저 한낱 나이가 먹어도 철없는 무지한 엄마의 괴팍함이고 무례함이 되어 버렸다.
'에라이, 역시 자식새끼 소용없다. 머리 크면 지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못난 엄마한테 못난 딸년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인 것이지. 그래, 넌 니 인생을 살아라.'
평생 특별할 것 없는 생일을 맞는 것이 처음도 아니건만, 나이가 드니 새삼 별의별 생각이 드는 생일도 맞게 되어 버렸다.
이 나이가 되어 바라는 건 그리 크지 않다.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유명인이 되고 싶다거나 세계일주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편안하고 평범한, 매일매일 건강하게 눈을 뜨고 애써 키운 자녀들을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소망, 늙어가는 엄마를 조금만 신경 써주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이고 꿈인 것인데, 자녀들은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너희들도 더 세월이 흘러봐야 알겠지. 잠들 때마다 내일이 올까를 걱정하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집이 두렵고 그래서 부담스러워하고 귀찮아하는 걸 알지만 혼자가 무서워 더욱더 너희들에게 철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억지를 부리며 어린아이처럼 매달리는 이 엄마를, 예전 나의 엄마 또한 그랬었다는 것을, 아주아주 한참의 세월이 흘러 알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