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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제이 Feb 24. 2021

집에 불이 났다

격리 14일차 한국으로부터


항문검사를 무사히 마치고(의료인 직접 채취가 아닌 셀프채취로) 격리생활에도 평화가 찾아오나 했는데... 이젠 집에 불이 났단다. 처음엔 베이징 집에 불이 났다는 줄 알고 당장 격리가 풀리면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했더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불은 대전 집, 다용도실을 다 태웠다.


다용도실의 음식물 쓰레기 냉동고에서 시작된 불은 바로 옆 플라스틱 쓰레기통으로 옮겨 붙어 20여분을 타올랐다. 사람이 집에 있었더라면 더 빨리 발견했을 수도 있지만 세입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일이 났다. 그래도 오랜 시간은 아니라 다행이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다치지도 다른 집으로 불이 번지지 도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다용도실 안의 물건들이 재가 될 정도의 불길도 아니었다. 다용도실 사방에 그을음을 남기고 화재사건은 끝이 났다. 죄송하다는 세입자의 말에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답했다.


화재청소는 2주간 진행된다. 간접화재의 경우 연기가 집안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집안의 모든 짐을 빼내고 연기와 냄새 제거부터가 화재청소의 시작이다. 의류와 이불 세탁, 이삿짐 보관과 두 차례 이사(짐 빼고 넣고), 화재청소와 복구, 전체 도배까지 아파트 화재보험에서 보장이 된다. 관리비에 포함되어 있는 그 화재보험 말이다. 2주간 집을 비워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보험으로 해결이 되고 완전하게 복구가 된다고 하니 한시름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사람 편하자고 만든 물건들이 자꾸만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니 말이다. 김치냉장고에 이어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까지 예의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인가. 식구가 적은 집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더 곤란하긴 하겠다. 남편도 혼자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아주 가끔씩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애를 먹었더랬다. 결국 냉동실 한편에 얼리는 방법을 택했다. 화재 감식 결과 음식물 쓰레기 냉동고에 물이 들어가 불이 났다고 한다. 이사 과정에서 물이 들어간 것 같다고 세입자는 전했다.


살다살다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까지 듣게 될 줄이야, 그것도 격리 중에 말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린다 해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이미 일어나고 만 일 이 정도라 정말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엇보다 다친 사람이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몇 해 전 해지한 주택화재보험을 다시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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