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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제이 Feb 26. 2021

장수면과 생일케익

격리 20일차, 끝이 보인다


중국에서는 생일에 '장수면'을 먹는 전통이 있다. 장수면은 말 그대로 장수를 기원하거나 축하하는 의미에서 먹는 음식인데 한 가닥의 끊기지 않은 긴 면으로 되어있다. 예상했겠지만 끊지 않고 한 번에 먹는 게 중요하다.


장수면의 유래는 한나라 무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상학에 조예가 깊던  무제가 대신들과 대화를 나누다 인간의 수명이 화제가 되었고, 얼굴이 길면(정확히는 인중이 길면) 장수한다는 관상학 논리가 도마에 올랐다. 결국 인중 길이와 수명은 상관없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뒤로 얼굴(면) 같은 발음을 가진 국수(면麵) 먹으며 장수를 기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얼굴을 길게 만들  없으니 기다란 국수를 먹으며 무병장수를 소망하는 거다. 요즘엔 장수면에 계란  알도 곁들인단다. 기다란 면은 '1' 계란  알은 '00' 합이 '100'이다. 우리야 '생일엔 미역국' 공식이지만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국수나 잡채를 먹기도 하니 장수면 전통이 신기할 것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점심식사와 함께 배달된 장수면을 받고는 어리둥절했다가 이어 전해진 생일케익을 보고는 감이 왔다. 오늘은 나의 음력 생일이다. 생일 축하는 생일에 해달라고 했건만, 음력생일은 생일 같지 않다고 했건만, 여권상 생일이 음력인 것이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다니. 장수면과 생일케익까지 먹고는 오래간만에 기분 좋은 배부름을 즐겼다. 옆방에 있는 작은 아이는 자기도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큰 아이에게는 엄마랑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옆구리를 찔렀다.


적잖은 이벤트와 함께 했던 격리생활의 끝이 보인다. 아이들의 중학교 입학을 위한 인성검사와 교과 심층면접도 온라인으로 무사히 마쳤다. 격리 해제를 위한 마지막 코로나 검사는 토요일 새벽 5시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오후 4시쯤부터 체크아웃, 한 명이라도 양성이 나온다면 다시 짐을 풀어야 할지도 모른다.


막상 호텔 밖으로 나가려니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마음이 복잡한 건 아이도 마찬가지. 북경 생활을 은근히 기대했던 아이인데 이제야 실감이 나면서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줄곧 다른 반을 주장했던 녀석들이 같은 반을 희망했다. 입학과 동시에 영어와 중국어 시험도 봐야 한다는데 중국어 여덟 달 배우고 온 녀석들이 HSK4급 시험지를 받아 들고 어떤 기분이 들까, 안쓰럽기도 하다. 반을 나누기 위한 시험이니 되는대로 보고 제일 낮은 반에서 조금씩 올라가는 것도 괜찮다고 했더니 아이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게 재밌겠단다. 설마 게임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욕심도 있고 집념도 있는 녀석이니 마음먹은 대로 해낼 것이다.


기다리던 구호물품은 격리 해제를 나흘 앞두고 배달이 되었다. 주중 한국대사관과 북경한인회에서 준비한 것인데 호텔 측과 사전협상 과정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격리생활을 관리하는 측에서는 부담이 될 것도 같다. 처음에는 라면을 기다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고파졌다. 우리 여기 있어요, 나를 잊지 말아요, 하는 마음이랄까. 많은 분들이 애써주신 덕에 항문검사를 무사히 넘겼고, 구호물품 덕에 풍족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 먼저 온 선배의 도움으로 아이들 학비를 늦지 않게 낼 수 있었다. 부동산의 도움으로 이삿짐을 받고 이사 갈 집에 인터넷을 미리 설치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이웃주민들의 도움으로 아이들 등하교 방법을 마련했다. 호텔에서 나가는 날은 부동산 중개인이 우릴 데리러 올 것이다. 혼자가 아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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