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김범석 대표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5월이었다. 쿠팡에서 투자 및 M&A 조직을 꾸리기 위해 사람을 찾는데 한 번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몇 차례 후행 투자와 공동 투자를 함께 하며 인연을 맺은 쿠팡 초기 투자자(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그분)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첫 만남에서는 괜한 선문답이나 인사치레도 없이, 모든 시간을 할애해 쿠팡의 고객 지향과 쿠팡이 풀고 있는 문제들, 왜 창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를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소프트뱅크로부터의 1조 원 투자 유치가 공개된 직후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타트업 투자 라운드에 성공한 직후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잠깐 동안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똑똑히 기억하는 한 문장을 들었다. "이번 소프트뱅크로부터의 투자를 포함해 여러 차례 투자를 받았지만 저 캐비닛 안에 있는 샴페인을 단 한 번도 터트리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우리 고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단 1%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 짧은 대화 이후는 첫 만남과 같았다. 고객, 고객의 문제, 고객의 문제를 풀기 위한 계획과 실행들, 고객의 문제를 풀기 위한 계획과 실행을 함께 할 사람들.
그 후 수 차례에 걸쳐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그로부터 약 6개월 이후에 쿠팡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의 모든 것을, 심지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유치 까지도 단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하는, 고객이 고통스러워하는 동안에는 절대 샴페인을 터트리지 않겠다는 창업가 그리고 그의 팀과 일할 수 있는 기회.
2015년 말에 쿠팡에 합류한 후 3년의 시간 동안 도저히 같은 회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 규모, 비즈니스의 형태 등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 고객지향만은 전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다는 걸 매 순간 확인한다.
이번건이 마무리된 직후의 짧은 전화 통화도 마찬가지였다.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조금 피곤한데 괜찮습니다. 우리는 아직 지치면 안 됩니다,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30초 정도 짧은 축하와 격려와 위로를 나눈 후에는 박수도 환호도 축배도 없이 또 고객과 고객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 고요함과 차분함과 그러나 큰 의지와 에너지에 안심하고 또 힘을 얻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는다.
VC로 일하던 시절 창업자들에게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게는 회사 보다 느리게 성장하는 창업자와 임직원이 가장 큰 위협이다." 라고 말해왔다. 그 말은 내게 부메랑과도 같아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이 회사에 머물며 항상 스스로에게 갈증을 느꼈고 가끔은 그 부족함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하다. 내가 언제까지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까 두려울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3년 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구성원에게 고객 지향으로 생각하게 하고, 성장과 혁신을 강하게 요구하는 그 문화와 분위기 때문이었을거라고 굳게 믿는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큰 도전의 여정에 어느 순간 동참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고 다시 한 번 각오를 새롭게 한다.
우리는 아직 단 한 번도 샴페인을 터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