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하고 열정적인 사람은 언제나 귀하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에게는 더욱 그렇기에 우리에게 채용은 일상이다. 쿠팡은 구성원들에게 'Hire and Develop the Best'를 15개의 리더십 원칙(Ledership Principle)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으며, 시니어 레벨의 리더일수록 이 리더십 원칙의 가중치가 커지고 평가와 승진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말 그대로, 회사가 누군가의 리더십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조직의 포지션 뿐만 아니라 협업 부서의 주요 포지션에 공백이 있을 때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외부의 누군가에게 제안도, 부탁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럴 때 상대방이 본인의 궁금함 또는 소개할 대상의 요청으로 매니저의 나이를 묻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순한 호기심인 경우도 있지만 매니저의 나이가 본인 보다 많냐 적냐가 의사결정에 큰 변수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때는 미리 물어봐 주신 것에 고마워하는 편이다. 나이에 따른 상하관계의 설정이 중요한 사람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경험으로부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 살아온 혹은 견뎌낸 시간이 사적인 관계에서 존중과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특히 장유유서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나이란 정서적으로 조심하고 세심히 살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 상, 업무 상 관계에서는 나이에 따른 위계가 비효율을 낳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는 유능한 어린 사람과 연로하지만 무능한 사람을 다수 경험했다. 그래서 나이와 역량의 상관성을 작게 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경험에서 오는 지혜와 통찰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능성을 인정하며 시간의 가치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편에 속하다. 하지만 이런 가정은 대상자가 건강한 과정과 탁월한 결과물에 기반해 나이로부터 비롯된 지혜와 경험을 증명했을 때에만 유효하다. 단지 숫자로의 나이만을 근거로 일방적으로 주장되는 그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도전이나 성장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데에는 어떤 노력과 자질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주의 대리인이 평가자로 나설 때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아주 단순화 하면 한 가지로 결론으로 귀결된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평가할 기준이 없거나 역량이 없거나 의지가 없거나 혹은 또 다른 어떤 연유로 대상자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른 채용은 특히 어떤 채용이 실패했을 때, 특히 그 포지션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시니어의 그것일 때 꽤 그럴듯한 핑계가 되기도 한다. 경험과 연륜이 있는 분을 기대하고 모셨는데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네요, 아쉽습니다. 따위의 변명이 가능한 것이다. 평가의 기준이 명확하고 채용의 결과에 책임을 묻는 문화를 가진 회사일수록, 나이는 평가 기준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피고용인의 입장에서 매니저의 나이를 의식하는 경우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사적관계와 공적관계가 같은 위계 안에 존재하는 경우가 다수인 한국의 업무환경을 감안할 때, 회사와 매니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 어린 매니저와의 관계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불편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는 회사가 구직자를 판단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구직자가 회사를 판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회사가 어떤 문화를 지향하는지, 지향하는 바를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는지, 그 지향점이 나와 맞는지 또한 판단과 검증의 대상이어야 하며 회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쿠팡은 레주메에 나이를 적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평가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숫자에 노출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무의식적인 편향성을 봉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할 때 나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회사에는 나 보다 어린 그러나 나 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나 보다 나이가 많지만 직급이 낮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서로 의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의 정확한 나이를 잘 알지도 못한다. 말 그대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우리 창업자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쿠팡에서 진리는 누군가에 의해 독점되지 않는다. 내가 창업자이고, 혹은 당신이 조직장이기 때문에 항상 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매 순간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그래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그 제안을 빈틈 없이 실행한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 한치의 의심이나 반론도 없이 그대로 공감한다.
Corporate Development에는 인도인 동료가 있다. 조직장인 나 보다 나이가 많고 국내외의 각 분야 선도기업에서 인상적인 경험을 쌓은 분이다. 나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건 아무리 쉬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의 정확한 나이는 매번 떠올리지 못한다. 이 글을 적기 위해 급하게 레주메를 살폈는데 적어도 나 보다 다섯살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욕심이 많고 적극적인 분이지만 자신 보다 꽤 어린 내가 마지막 순간 최종적인 의사결정자이며, 실행의 과정에서 내 가이드와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단 한 번도 불편한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사적인 대화에서는 "션, 그래도 내년쯤에는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하지 않겠어?", "션, 우리팀은 평양냉면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아. 편식은 좋지 않아." 같은 연장자의 조언을 주기도 하며 나 또한 그런 의견들을 꽤 열심히 듣는 편이다. 그러나 일의 영역에서의 결정과 실행, 삶의 영역에서의 지혜와 조언은 어렵지 않게, 자연스럽게 구분되며 전혀 혼란스럽지 않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한 결과로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스스로에게 객관적이다. 부족함을 드러내며 인정하거나 모르는 무엇을 묻고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올바른 결정과 실행을 통해 보다 성공에 근접할 수 있고,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적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이라고 정의하며, 지원자로부터 이것을 발견하는 순간을 성공적인 채용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여긴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이 어린 매니저와의 상호작용은 스트레스가 아니다. 내가 배울 무엇을 가진 사람이라면, 노인이든 아이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라도 배울 수 있다.
프로페셔널에게 단순한 숫자로의 나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가 프로페셔널로서 보낸 시간이 건강한 과정과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험과 지혜로 치환될 때에만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