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그중에서도 스타트업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고객에게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경험을 '창조'하거나 기존에 존재했던 경험의 가치를 적어도 10배 이상 '진화'시켜 고객의 선택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둘 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것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막연하게 특정한 영역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소위 '전문가'가 이런 '창조'와 '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고, 이런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애쓰고, 이런 사람을 채용한 후에 필요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것을 본다. 나는 이런 접근을 경계하는 편이다. 나아가서 '비 전문가 vs. 전문가'의 프레임보다 '훈장 vs. 학생'의 프레임이 스타트업에 필요한 사람을 좀 더 잘 정의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내가 경험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한 관점을 자신의 경험과 성취에 온전히 의존해서 이해하려 하고, 이것을 지렛대 삼아 어떤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했다. 업계 최고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더 나아가서 내가 경험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반영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이것을 자신의 업적과 성취에 대한 도전 혹은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기도 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토론에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장인 동시에 경험이 적은 사람을 단번에 제압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을 접할 때마다 궁금해진다. 그는 정말로 이 문제를 해결해봤을까, 이 문제가 무엇을 가로막고 있으며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이 문제가 그 사람이 경험한 그 문제와 정말 동일한 것일까. 나는 이 물음들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다. 이 문제가 그가 경험하고 해결한 문제와 어떤 측면에서 닮아있거나 유사할 수 있지만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업무의 과정에서 이런 문장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이 문장과 그 안에 담긴 오만함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조직의 존재 의미와 사명을 부정하며 동료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나는 스타트업이 '문제 해결', 고객 경험의 '창조'와 '진화'를 정체성으로 하는 조직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이 조직에 합류하면 그가 속한 조직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방식으로 재정의하고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해당 스타트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해결방안은 지극히 평범해진다. 평범한 문제를 평범하게 해결하는 것은 스타트업의 방식이나 존재의 이유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경험과 성취가 그 사람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지 비전문가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 해결 방식과 태도, 성취에 대한 야망을 판단하기 위한 예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본인의 경험과 이해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고 내가 아는 방식만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훈장형 인간인지,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미친 것처럼 느껴지는 방식을 포함해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고정관념이나 편견 없이 매번 최고의 솔루션을 내고자 하는 노력하는 학생형 인간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조직, 특히 스타트업을 지향하는 조직에 필요한 사람은 훈장형 인간이 아니라 학생형 인간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