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하루를 할애해 ‘The Pacific’이라는 HBO 시리즈를 완주했다. 내심 HBO에서 만든 2차 세계대전 소재의 또 다른 시리즈인 ‘Band of Brothers’의 변주를 기대했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야기와 메시지가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여섯 번째 에피소드인 ‘Peleliu Airfield’이다.
이 에피소드는 미군이 펠레리우섬에 상륙한 후 보급과 병력 수송의 핵심 거점인 비행장을 일본군으로부터 탈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군이 상륙하기 전 섬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군은 이미 지형을 완전히 파악한 후 주요 요충지에 겹겹이 병력을 배치했고 일명 ‘옥쇄작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죽음을 불사한 결사항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 미군은 작전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결국 적을 공략하는 데 성공해 비행장을 탈환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해병대, 그중에서도 할데인 대위가 이끄는 1사단 5 연대 3대대 K중대가 선봉에 서서 치열한 접전 끝에 어려운 그러나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하며 펠레리우 섬 탈환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미국이 태평양전쟁의 승기를 잡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선봉대가 적과 접전을 펼치는 동안 육군과 일부 해병대 병력은 후방에서 포 사격과 경계 등의 임무를 맡게 된다.
목숨을 건 전쟁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회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익숙하고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고 실패하기 어려운 일을 선호한다. 임팩트가 상대적으로 작고 안정적인 상황에서 거둔 그것이긴 하지만 회사에 필요한 어떤 일을 수행한 것만은 분명하다. 전장의 상황으로 치환한다면 경계 근무, 후방 포 사격 등이 이런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정의하려 한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생소하고 불확실하고 위험이 큰 일에 앞장선다. 성공보다 실패가 가깝고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내더라도 지난한 시간과 시행착오, 그 과정에서 직면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해내야 하지만 목표를 달성할 경우 회사와 고객에 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전장이라면 적진 한복판에서 강하하는 공수부대나 촘촘히 탄막이 형성된 해안에 상륙하는 해병대의 작전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해야 하는 일’로 정의하려 한다.
회사에는 두 종류의 업무와 사람이 모두 필요하고 어떤 일을 선호하느냐도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선호나 판단에 기반할 뿐 어떤 것이 더 낫다 모자라다 라고 말할 수 없다고 믿는다. 불확실과 변화를 회피하는 속성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기도 하다. 또한 누구에게나, 그 크기와 관계없이, 어떤 일을 해낸다는 건 뿌듯하고 즐거운 경험인데, 그 대척점에 있는 실패의 고통과 두려움의 경험에 비교한다면 그 보람과 즐거움의 가치는 더욱 배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경계근무와 박격포 사격과 부상병 치료만으로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 누군가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노르망디에 강하하거나 이오지마에 상륙해서 죽음의 위험을 감수한 위험한 작전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결국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의 진짜 도전은,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처럼, 단지 ‘시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결국 그 일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시도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 희소하기에, ‘해야 하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매니지먼트팀과 회사에 대단히 소중하고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하는 ‘대체 불가능한 전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조직의 정체성에 ‘불확실성’과 ‘도전’, ‘혁신’이라는 정체성이 새겨져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해야 하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고 믿으며 또한 이런 스타트업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라면 일의 쉽고 어려움이나 예측 가능한 성공보다 일의 당위성과 그 일을 수행했을 때 영향력의 크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회사에 대한 기여를 떠나 ‘프로페셔널로서 한 개인’이라는 관점에서도 어려운 문제에 맞서고 이를 해결해 낸 경험은 역량과 자신감에 극적인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