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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 데라야마 슈지 지음/ 김성기 옮김

상상력과 도발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천재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




'데라야마 슈지'는 200편의 문학작품과 20편의 실험적인 영화를 남기고 1983년 사망했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한 삐따기의 반기와 저항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영감을 주었다. 

그는 기존의 상식과 개념을 완전히 뒤엎고 발칙한 상상의 예술을 펼쳤던 전방위적인 아티스트였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의 제목은 앙드레 지드의 작품인 '지상의 양식'의 서문에서 '다 읽고 나면 이 책을 던져 버려라.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라. 이 책이 너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켜 주길 바란다. 너의 집에서. 너의 서재에서 그리고 너의 생각에서 벗어나라.'라는 구절에서 나왔다.

아마 '데라야마 슈지'는 '지식의 울타리에서 머물지 말고 즉각 행동하라'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감독, 시인, 소설가, 사진작가이자 경마광이었던 데라야마 슈지(사진출처: www.petertasker.asia)


저자는 이 책에서 상식의 파괴와 사회적 금기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펼치고 있다.

특히 기성세대에 대한 거의 일갈은 대범하고 거침이 없다.

보수와 권위의 상징인 기성세대에 대한 결별 선언은 그들의 모든 잣대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과감한 도끼질이며 자기 독립선언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력을 통한 기성세대들의 젊은 여자 찬탈 행위는 성과 경제력의 분리 즉, 性經分離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성적인 측면에서 남근 중심의 경쟁만 한다면 아랫도리 팔팔한 청년들의 일방적 승리이며, 이들 청춘을 통해 성적 르네상스를 열어야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청춘은 평범한 여인상을 갈구하기보다 최고의 여자 적어도 '소피아 로렌'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정도의 여자를 품을 수 있어야 진정한 성적 르네상스라는 것이다.

윌리엄 클라크의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가 아니라 "젊은이여 더 큰 엉덩이를 품어라"라는 셈이다. 



기존 질서에 대한 그의 반기는 성적 자유에서 도박으로 치달린다.

파친코와 경마로 대변되는 도박.


사실 그는 경마 마니아였다. 그래서 경마에 관한 많은 글을 썼는데 '도박이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파친코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알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도박이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이득과 손실을 알 수 있는 확실성의 게임인 것이다.

1971년 개봉된 동명영화, 전위영화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데라야마 슈지(사진출처: www.eastman.org)


아마 그 당시 불확실성의 일본 사회에서 이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


평범하고 무의미한 일상생활 속에서 일탈과 재미를 꿈꾸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반기이며 저항인 것이다.


그의 도박성은 새로운 주의주장인 '일점호화주의'를 내세운다.

이 주장 또한 기성세대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반론이다.

기성세대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급여의 일부분을 정기적으로 저축함으로써 미래의 지출을 준비하고 예측 불가능한 위기 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중장기적인 미래를 대비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금융 철학인 것이다.

그러나 데라야마 슈지는 과감히 이런 방식을 걷어 치워 버리고 '일점 호화주의'를 주장한다. 

이 매혹적인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고정적인 수입과 저축, 잘 통제된 금융방식으로는 절대 에로스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는 말한다.

'한 가지를 위해 나머지를 포기하는 자유' 즉, 자신이 쏟아 부을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에 모든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자는 것이다. 불필요하며 무가치한 곳에 아까운 돈을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다리 밑 거적을 덮어쓰고 살더라도 '벤츠'나 'BMW' 등 고급 승용차를 타는 것. 

일주일 내내 라면으로 연명하다가, 모은 돈으로 일류 호텔의 프랑스 식당에서 A급 정식 메뉴를 먹는 것. 

단 한 번의 외출을 위해 평소에는 운동복 바람으로 지내다가 '아르마니'나 '보스' 양복을 한 벌 산다든지.

여기저기 쓸데없는 곳에 분산 지출하지 말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집중 지출하라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요즘 명품주의와 유사한 과소비 형태의 발언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유한적 존재라고 할 때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대상에 모든 것을 걸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간다면 생의 즐거움이 없을 것이다.



그의 유쾌한 상상력은 기존 상식을 뒤엎는 역발상으로 이어진다.

그는 점잖은 플레이보이보다 아주 예의가 없는 無禮한 즉 일본식으로 '부레이보이' 위한 '백서를 발간한다. 

이런 내용들이다.

사교장에서 교양과 품위가 넘치는 표준말 대신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라는 방법을 제시하고 플로우에서 절대 춤을 추지 말 것이며, 아주 우스꽝스러운 남성용 속옷을 입고 심지어 그것을 드러내고 사교장으로 가라고 한다.


플레이보이로 사는 것도 일탈적 행위인데 무례한 '부레이보이'를 위해 백서까지 발간하다니 기존 가치를 뒤집는 그의 전복 행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결국 그는 사회적 금기인 가출과 자살미화까지 거론한다.

가출은 반복적인 일상으로부터 탈출이며, 그 사상적 행위를 통해 자아의 반성과 새로운 출발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며, 자꾸만 가출을 부추긴다. 이것을 그는 '일점 파괴주의'라고 한다.
아오모리에 있는 데라야마 기념관(사진 출처: 구글)


이를 통한 인간성 회복.

일탈과 질서의 파괴 속에서 새로운 탄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완전한 파괴는 극단적인 자살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는 자살마저 너무 무겁지 않게 아주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고 있다.

가령 고통 없이 자살할 수 있는 기계장치를 해괴한 상상력으로 제작한다든가. 유서를 잘 쓰는 방법,  '자살 라이선스를 발급하여 자살의 질적 가치를 높이자'라는 그의 의견은 기상천외 하다. 그리고 14가지 정도의 자살방법을 제시한다.

특히 '성기가 작다고 고민하여 자살하는 사내는 자살 세계에서 영원히 추방하자'는 그의 말은 웃음폭발이다. 

그는 1983년 간경변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짧은 47년의 생애 동안 연극, 영화, 소설, 평론, 방송, 경마, 복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적인 예술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단 한 권의 이 책만으로도 시대와 다른 방향으로 고속 질주했던 그의 보통스럽지 않은 사상과 행동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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