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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




하루키의 힘은 무엇일까?

매 순간 그의 책이 세상에 나올 때 독자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아낌없이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이미 번역본이 나오기 전 인세비가 몇 억을 호가한다는 뜬소문들이 출판계에 돌고 책이 나오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희귀한 현상.

역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마찬가지였다.



전체 서사의 구조는 단순하다. 

고등학교 시절 5명의 친구가 있었고 4명은 각각 흑과 백, 적과 청의 색채를 가졌지만 주인공 본인은 무색무취의 평범한 인간이었다. 어느 순간 친구들로부터 일방적인 퇴출 명령을 받고 오직 죽음만 생각하다가 깊은 트라우마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4명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러 떠나는 순례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일본판 '색채가 없는.......떠난 해' 표지
하루키는 젊은 도시인들의 고독한 감수성을 잘 포착하여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며 모던한 소품들을 활용해 세련된 도시문화를 창조한다. 그리고 전체 이야기 속에 비현실적인 설화를 배치하여 다소 낯설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철도 역사를 만드는 엔지니어이며, 그 밖에 렉서스 자동차 딜러, 기업 교육 컨설턴트 등을 내세워 스타벅스 커피, 폭스바겐의 골프, 고급스러운 갖가지 명품 의류, 품격 있는 클래식 음악 등으로 치장하여 한껏 도회적인 세련된 이미지로 덧칠한 후 공허한 도시인들의 고독을 다룬다. 

집단 따돌림당한 주인공의 죽음과 같은 고독감. 사랑하는 연인에게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는 고독감. 홀로 기차역에서 커피를 마시며 도착과 출발의 공간인 플랫폼에서 바라보며 느끼는 고독감.

하루키는 고독의 순간을 낚아챌 수 있는 사냥꾼적인 본능을 갖고 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도시인들의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잘 알고 있다.


적절한 장소와 배경, 인물의 독특한 스타일, 그리고 도시적인 소품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소설 속에 끼워 넣은 채 망치로 여러 번 잘 두드려 세련된 고독감을 만들어 낸다.
노벨문학상과는 멀어 보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는 하루키의 시선은 집요하며 매우 세밀하다. 

가령 여자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샅샅이 관찰하여 헤어스타일과 화장, 이목구비, 목선, 가슴의 크기, 잘록한 허리. 매끈한 종아리, 구두의 종류까지 세세히 표현한다. 남자보다 여자에 대한 관심이 더 큰 하루키이다. 

그의 독자들이 주로 여성층이 많은 것도 이해할 만하다.  

사실 하루키는 고리타분한 사회적인 문제보다 도시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집착한 언어들을 쏟아내며 그것을 다시 패션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된 도시적 장치들과 혼합시켜 많은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간혹 사회를 향해 툭 던지는 한마디는 하루키가 갖고 있는 문학적 성취와 대중성을 볼 때 초라한 군소리에 불과하다. 아마 그는 영원히 노벨문학상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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