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 홍대선 지음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치열하게 살았던 6인이 알려주는 삶의 태도



내 생애를 거쳐간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은폐된 공간을 좋아했고 무리를 지어 어울리는 놀이보다 혼자의 시간을 유희처럼 즐겼다. 때론 사춘기 시절 염세주의니, 실존주의라는 개똥철학에 빠져 한낮의 공동묘지에 누워 소멸의 끝을 묻기도 했고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생의 의미에 대해 무거운 외투를 걸치곤 했다.

청년 시절에는 맑스와 킴주의 사상에 전도되어 세계의 전복을 꿈꾸며 아스팔트를 질주하기도 했다.

이후 거듭된 세상살이의 실패와 삶의 오류 속에서 존재의 추락은 끝이 없었고 내 안의 답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원망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 니체는 망치를 들고 나타나 죽은 나의 심장을 난타했다.


"큰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 이 고통만이 우리를 우리의 최후의 깊이에 도달하게 한다"


일 순간 니체가 전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짧은 잠언과 시적 경구는 나를 대지 위에 다시 서게 한 구원의 나팔소리였다. 위기의 모든 순간마다 한 줄의 철학적 메시지가 없었다면 나는 한없이 무너져 내려앉았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태양이 무너진 광란의 시대와 다름없다. 

적자생존과 무한 경쟁, 자본이 왕관을 차지한 채 온갖 불평등의 오물들을 배출하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자본 앞에 난도질당하고 억울한 죽음들이 도처에서 장송곡을 울리고 있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구원의 체제는 오아시스 속 모래성에 불과하며 우리는 매일 쓰러지고 절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구원의 철학자가 필요하다. 저자 홍대선은 6명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분명한 사실은 철학이 아닌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외대 철학과 출신의 저자 홍대선
지은이는 "한 사람의 철학이라는 건 시대상, 그의 성격 개인적 경험과 분리될 수 없기에 철학뿐 아니라 철학자들의 삶을 함께 담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이렇게 접근하다 보니 시대상, 철학자의 삶, 철학 그 철학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간론까지 하나의 고리로 완성되더라고요."라며 출간의 이유를 말했다.


삶의 고통과 육체적인 질병, 세상과 유폐된 절대 고독과 주변의 조롱, 인간적인 비하와 멸시를 받으며 자기 철학을 완성한 6인의 철학자들.


세계와 인간에 대한 비범한 분석과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며 세기적인 사상을 확립한 철인들이지만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없이 흔들리고 휘둘렸던 '개인들'이었다.


저자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등을 소개하며 '견고한 자아' 탄생의 비밀을 보여 주고 있는데 철학적 명제에 대한 해설보다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그리고 칸트


죽을 때까지 10시간의 수면을 즐긴 데카르트는 영원한 호기심을 지닌 지적 탐험가였다. 기독교와 개신교 군대를  오가며 종교의 본질을 알고자 했으며 의학과 법학 전공을 통해 인간을 탐구했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Cogito ergo sum'을 주장하며 기독교적인 신의 사상에서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사상으로 전환시킨 위대한 철인이었지만 병약한 몸으로 태어나 평생 고생을 한 인물이다.

또한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동거 생활 중 얻은 딸은 2살 때 죽었으며 그도 스웨덴 여왕의 초청으로 '바위와 얼음 한가운데 있는 곰의 나라'에서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고 그의 머리는 잘려 한동안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비극을 당하기도 했다.



스피노자는 성공한 네덜란드의 사업가의 자손이지만 후계자라는 집안의 기대와 랍비라는 유대인들의 희망 사이에서 고뇌와 번뇌를 거듭하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철학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렌즈 세공 기술을 익혀 생활고를 해결하며 늦은 밤 새벽까지 저술활동에 몰두한 철학자였다.

'인간 자체의 목적은 없으며 행복이 최선이다'라는 근대 시민사회의 윤리를 최초로 제기하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했던 그는 '신학 정치 논고'를 출간하며 세인들로부터 '사탄의 자식' 혹은 '악마와 거래한 자식'이라는  신성모독자로 몰리며 사후에는 그의 시체마자 탈취 당해 빈 관으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쇼펜하우어는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으며 어머니와는 평생 불화로 살았으며 '여자는 종족 번식의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혹은 '여자보다 개가 좋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여성 혐오주의자였다. 그러면서 '인간은 태생적으로 죽음의 팔에 안겨 춤을 추는 운명을 타고났다'라며 삶에 대해 진중하게 논했던 철학자였다.

왼쪽부터 헤겔,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


오랫동안 어머니와 헤겔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지만  60대에 비로소 프랑크푸르트의 명물, 푸들을 사랑하는 철학자가 된 쇼펜하우어는  삶을 '불행과 우울의 연속'이라고 했지만 누구보다 더 지위와 명예, 성공을 꿈꾸었던 인간적인 철학자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신동 니체.

이미 24살 때 스위스 바젤대학교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된 유럽 문헌학의 미래.

'비극의 탄생'으로 철학으로 전환하며 아름다운 문학작품과 같은 철학서를 남긴 니체.

평생 독신으로 살며 두통과 안압의 고통 속에서 집필을 강행했던 니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며 운명애, 위버멘쉬, 영원회귀 사상을 전파했다. 그는 철학가이면서 문학가이다.




홍대선의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는 난해한 철학 개론서가 아닌 읽기 쉬운 수필 방식으로 구성돼 있어 마치 먹기 좋은 곶감과 같다. 그가 밝힌 대로 '이들의 철학은 현대적 개인이 탄생한 과정이며 따라서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라는 말에서 철학자 개개인들의 삶을 따라가 보면 어떻게 한 인간이 '견고한 철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을 주머니에 차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