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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메콩강으로 해는 지고

5. 비엔티안의 야시장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땀투성이다. 깨끗이 씻고 싶었다. 또한 빠뚜사이에서부터 수상한 징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여행지에서 겪는 나만의 통과의례이다. 배앓이 그리고 배변욕구.

동경 도쿄타워에서 북경의 만리장성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불청객이다. 

화장지를 가지러 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근데 어두운 구석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군가의 달콤한 잠을 깨운 듯 해 '미안하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괜찮다'라는 목소리. 그런데 어라 여자 목소리 같은데.. 우선 급한 뒤처리 때문에 별생각 없이 화장실로 직행했다. 변기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니 아무래도 여자 목소리였다. 아무리 게스트하우스이지만 혼숙은 미처 경험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일이다.

좁고 좁은 곳에서 생면부지의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야 하다니 호기심은커녕 불쾌감마저 들었다. 아무리 잠만 잔다고 하더라도 예민한 성격인 나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목소리의 성별을 확인했다.


분명 여자였다. 짧은 다리와 짧은 팬츠. 다소 통통한 몸을 가진 처녀이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를 자주 이용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처음이다. 한 방안에서 낯선 사람과 지내는 것이 극도로 싫어서 패키지 여행은 물론 친한 사람과 여행도 가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우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근처에 한국식당이 있다는 정보를 가이드 북에서 확인했다. 웬만하면 한식당을 찾지 않고 현지 음식이나 빵으로 배고픔을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유독 한국 음식이 당겼다. 나는 '뚝쌈빠' 식당을 찾아 나섰다.

자전거 페달을 몇 번 밟자 곧바로 폰 트래블 여행사 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사장님인 듯한 분이 한국말로 '어서 오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식당은 넓은 마당에 테이블을 차려 놓고 영업 중이었다. 벌써 한 테이블에서는 외국인이 라오 맥주와 함께 식사 중이다. 어린 소녀가 내게 오더니 시원한 물 한잔 갖다 두고 메뉴판을 내민다. 나는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김치와 두부, 오이무침 반찬이 함께 나왔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단숨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불과 하루 만에 먹는 한국 음식인데 이다지도 맛있는지 몰랐다.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주인에게 괜찮은 호텔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대략 20달러 수준에서 하룻밤 잘 수 있는 'V 호텔'을 추천했다. 나는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Expedia 앱을 통해 호텔을 검색하여 예약했다. 


그리고 곧장 짐을 챙겨 나왔다. 4만 킵은 날렸지만 한화로 5천 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무엇보다 낯선 처녀와 불편한 혼숙을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지옥이다. V호텔은 최근에 지은 듯 깔끔해 보였다. 인포에서 예약을 확인을 하고 방으로 이동했다. 비록 실내 창과 냉장고는 없었지만 깨끗했다. 약간 마감처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허술한 부분도 있었지만 하룻밤 자기에는 손색이 없다.



나는 곧장 카메라를 들고 짜오 야노웡 공원으로 달려 나갔다. 메콩강으로 저물어 가는 일몰을 보고 싶었다. 이미 강변에는 여행자들과 라오스 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배회하거나 강둑에 앉아 노을 속에 소멸하고 있는 태양을 보고 있었다. 

메콩 강은 물안개와 옅은 어둠이 어울려 조용한 시골 강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물어 가는 태양은 뚜렷한 붉은 원형을 유지하며 구름 속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 나는 라오 맥주를 마시며 조용히 일몰을 구경했다. 아무런 인공 건물이 없는 자연 풍경 속에서 사라지는 태양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야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상인들은 천막을 치며 여러 물건들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각종 의류와 신발, 장난감, 공예품, 기념품 등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붉은 천막과 전등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야시장 입구에서는 수백 대의 오토바이들이 질서 정연하게 주차돼 있고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왔다. 왓 짠 사원 앞에는 갖가지 노천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각종 고기구이와 튀김, 볶음밥, 쌀국수, 바게트 등 먹을거리들이 진수 성찬식으로 펼쳐져 있다.             나는 그저 보기만 할 뿐 선뜻 어느 것 하나 사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다. 단지 라오스 기념품 정도 구입할 생각이었다. 상점 주인들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서울 남대문 시장처럼 구매를 강요하는 호객행위는 일절 없었다. 손님이 가격을 물어보면 묵묵히 대답만 할 뿐이다. 가족의 생계와 행복을 위해 치열하게 사는 모습에서 삶의 숭고함을 엿볼 수 있다. 낡은 휠체어에 앉은 까만 손의 노파는 막대 풍선을 불며 예쁜 풍선 장식을 만들고 있다. 길바닥에 퍼져 앉은 여인도 허리춤에 전대를 두르고 풍선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 여인은 종이 방석을 깔고 물바가지를 내밀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린 소녀는 풍선 장난감을 가득 안고 인파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살고자 하는 생의 치열함. 때론 비루하고 천박해 보일 수 있지만 남의 시선으로 쉽게 제단 할 수 없다. 그녀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은 슬프거나 아름답지도 않다. 그냥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그리고 빈 플라스틱 생수병을 줍고 다니던 그 소년.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녀석.

나는 우리말로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물어본다. 당연히 아무런 답변도 없다.

더벅머리와 맨발. 검은 비닐봉지를 어깨에 메고 넝마주이 마냥 여기저기 버려진 생수 병을 줍고 있다. 나는 사진 촬영을 부탁했지만 그 소년은 단 번에 거절했다.                    


그리고는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다시 한번 부탁을 했고 그 녀석은 Money라며 모델비를 요구했다. 5천킵이었다. 나는 오케이라고 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

나는 만킵을 그 녀석에게 주었다. 그 소년은 뜻밖의 큰돈에 감격 무량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왠지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매콩 강변에는 모터 행글라이더가 날기 시작했고 강어귀에서 누가 불을 놓았는지 매캐한 연기가 났다.


나는 짜우 아노웡 왕의 동상으로 향했다. 1882년 씨암(태국)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끝까지 저항한 란쌍의 마지막 왕이다. 그는 메콩강 맞은편 태국을 향해 준엄하게 손을 뻗

어 복수를 다짐하는 듯하다. 해가 진 저녁이었지만 라오스 인들은 동상 앞에 헌화를 하고 무릎을 꿇은 채 존경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여행자 거리로 돌아왔다. 몸은 고단하지만 일찍 호텔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여권을 맡기고 자전거를 빌렸다. 이번에는 메콩강변을 따라 달렸다.


야시장을 지나자 강변 쪽으로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어둠 속에 불빛은 알룩달룩하고 가수들의 노래는 습한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간다. 여기저기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종업원들은 주문받기에 바쁘다. 대략 200미터 정도 길게 늘어선 노천 카페는 외국인들의 세상이다. 


다시 야시장으로 돌아와 시내 중심가로 달렸다. 도로는 어두 었고 차량과 오토바이들은 많았지만 자전거를 타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어디쯤 갔을까. 불야성을 이룬 야시장에 도착했다. 백열전등 아래 갖가지 음식들이 밤손님들을 맞고 있다. 일대의 오토바이 무리들이 굉음과 함께 활보한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구경을 하다가 왁자지껄한 소리에 이끌려 골목 한 귀퉁이에 멈추었다. 일본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러 온 듯 환하게 밝은 조명 불과 여 아나운서가 현지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담벼락 아래 공지에서 아저씨들이 구슬을 굴리며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무슨 놀이를 하는 것 같은데 당최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페탕크'라는 구슬치기 놀이였다. 원래 프랑스 남부 지방과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행해진 놀이인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전해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호기심으로 보고 있다고 갑자기 자전거가 지쳤는지 쓰러지면서 내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찧고 말았다. 순간적인 엄청난 아픔이 몰려왔다. 혹시 부러진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행히 발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큰 문제는 없는 듯했다. 나는 자전거를 올라타고 비엔티안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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