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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원 왓씨쌰켓과 빠뚜싸이

4. 황금 빛 사원 그리고 열반을 향한 간절한 기도

라오 맥주를 먹은 자전거는 앞바퀴를 비틀거리면서 나를 태우고 질주한다. 도로는 한 방향으로 흐른다. 무질서 속에 질서라고 할까. 짜증 섞인 경적이나 접촉 사고 없이 신기할 정도로 잘 흘러간다. 태양의 빛나는 뜨거움보다 공기의 열기, 아스팔트의 지열이 힘들다.


그늘은 거의 없다. 간혹 높은 나무 그늘이 오아시스와 같다. 자전거에서 내려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한다. 대통령궁 앞 왓 씨싸껫이 있다. 1818년 짜오 아누웡 시절에 건설된 사원이며 비엔티안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나는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웠다. 이름 모를 큰 나무가 사원 입구를 덮고 있다. 그리고 무명의 화가가 한 쪽 구석에서 불화를 그리고 있다.


사원 출입문의 윗부분은 낡고 곰팡이가 핀 나무가 매달려 있다. 여기저기 전깃줄이 거미줄 마냥 엉켜 있다. 황금색 기둥과 겹겹이 내려앉은 지붕은 날렵한 제비의 날개 같고 지붕 맨 위에는 닭 모양의 물상이 있다. 대법전 '씸'은 신발을 벗어야 들어설 수 있다. 정중앙에 불상을 모시고 주변에는 작고 낮은 불상들이 모여 있다. 내부 균열과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철골구조물을 설치해 두었다.

나는 양탄자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이 생애 집착과 탐욕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로써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남은 삶은 내 뜻대로 살며 덕을 베풀며 이타적으로 살 수 있도록 기원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부처의 나라에서 숭고한 마음으로 올렸다.


건물 벽면은 부처의 전생을 그린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몇 백 년 전 누군가의 불심으로 한 점 한 점 그려 넣었을 벽화.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빛바랜 흔적만이 왓 씨싸껫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대법전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은 불상 박물관이다. 결부좌 자세의 불상이 회랑을 따라 늘어서 있다. 심지어 작은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고 있다. 전체 6,840개의 불상이 있다고 한다. 한쪽 팔이 없거나 머리가 없는 불상도 있다. 나는 회랑을 따라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변함없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생애를 제대로 살 수 있도록 기원했다. 대법전의 벽면은 부처의 모습을 철을 이용하여 부조 형태로 조각해 두었는데 그 정교함과 미려함이 대단했다.          



사원 여기저기에는 붉고 노란 독참파 꽃나무가 피워 있었다. 황금빛 사원과 잘 어울려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그 꽃나무 아래 잠시 쉬었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이 머나먼 곳에서 나는 존재하고 있다. 내가 알기 전에 이미 존재했던 공간과 사물. 우리는 이토록 오랜 세월을 지나서야 만나고 있다. 아직도 내가 인식하지 못한 세계는 존재하고 있다. 단지 나의 눈과 발로 직접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공간을 확인할 수 있을까. 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삶의 가치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금발의 젊은 청춘 남녀가 내 뒷자리에 앉는다. 



다시 왓씨싸켓 사원을 나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프랑스 대사관을 지나 마호쏫 병원을 지났다. 오른편으로 메콩강변이 보인다. 어떤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도로의 흐름에 따라 달려본다. 여행자 거리를 벗어나자 여행지의 모습이 아니라 라오스 인들의 실생활 모습이 드러난다. 빵집과 국숫집, 병원과 카페, 사원 등이 보인다. 사원 앞에는 불단에 올릴 공양물인 양초, 꽃, 바나나, 코코넛 등을 팔고 있다. 나는 자전거를 탄 채 시무앙 사원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 젊은 스님 앞에 많은 젊은 남녀들이 앉아 있다.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소원을 빌고 스님께서 이를 주관하는 듯했다.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은 허물어져 버린 낡은 건물이 보인다.

                   



나는 다시 사원을 나와 타노란쌍 도로를 따라 빠뚜사이로 향했다. 여전히 날씨는 무덥다. 중앙로로 빠져나오자 여기저기 자전거 여행자들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며 도시를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문화 유적지를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구경할 수 있는 여유란 자유 여행이 주는 참 맛이다.

나는 빠뚜사이를 가는 도정에 아무런 경적소리를 듣지를 못했다. 그 복잡한 도로에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전거를 짜증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배려해 주는 마음은 라오스 인들의 미덕이다. 멀리 빠뚜사이가 보인다. 1969년 건설한 승리의 문이다. 마치 왕관의 모습 같다. 비롯 시멘트로 만든 짝퉁 개선문이지만 천장과 바깥 문양은 라오스 양식으로 꾸며 두었다. 


나는 빠뚜싸이 천장 아래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빈 의자에 앉아 라오 맥주를 마셨다. 벌써 두 개째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서성거린다. 한국인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라오스 청소년들이 왁자찌걸 떠들며 웃고 있다. 나이 많은 서양 아저씨도 맥주를 마시고 있고 주변 공원 땡볕에는 여행자들이 서성거린다.


하늘은 맑은 듯 흐리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그 빛살 속으로 뛰어든다. 

라오 맥주의 힘인지 자전거는 잘 달린다. 여전히 거리의 그늘은 없다. 이미 얼굴과 팔등이 화끈거린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탓담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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