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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땅, 라오스를 가다

6. 방비엥 가는 길 


새벽 5시 일어났다. 탁발을 보아야 한다. 라오스 여행의 목적 중의 하나이다. 루앙프라방의 탁발이 유명하지만 이번 여정에는 없다. 비엔티안에서 보지 못하면 기회는 없다. 나는 무턱대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 메콩강에서 사라진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고요한 푸른 새벽이다. 


여행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풍경. 게으른 자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친다.

사원 근처로 걸어간다. 어디서 탁발이 시작될까. 혹시 늦지는 않았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여행자의 거리를 서성거린다. 어제 당황스러운 혼숙을 경험할 뻔했던 게스트하우스도 보인다. 금발 머리와 잘 어울리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던 그녀도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망상에 빠져 있을 때 저 멀리 어두운 곳에서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용한 걸음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은 채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한 줄로 늘어선 행렬은 이미 탁발을 마친 듯 한 손에 공양물을 들고 사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아쉬웠다. 스님들께 공양드리는 경건한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지 못한 루앙프라방을 위해 나는 다시 라오스로 돌아올 것이다.

V호텔 조식은 괜찮았다. 향신료가 섞인 닭죽과 토스트, 다소 단맛이 짙은 주스와 우유 한 잔을 마셨다. 8시 30분경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전날 예약한 방비엥행 VIP 버스는 9시 30분에 출발한다. 


나는 천천히 출발장소인 게스트하우스로 걸어갔다. 그리고 또 한국인을 만났다. 전날 내게 방비엥 일정을 물어보던 여자와 젊은 연인들이 깔깔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주인장도 아는 척한다. 그때 버스 한 대가 문 앞에서 서더니 방비엥이라고 외친다. 어라 아직 출발 시간이 30분 남았는데. 이것이 라오스 타임이란 말인가. 

나는 배낭을 짐칸에 싣고 버스에 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불어온다. 역시 VIP버스이다. 이어서 젊은 한국인 남녀가 타고 외국인 한쌍이 타더니 버스는 곧바로 출발한다.


미니 버스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쪽으로 이동하여 방비엥 여행자들을 픽업한다. 또다시 한국인이 탄다. 경상도 젊은 남자 친구 한 쌍이다. 그리고 중국인 한 쌍. 마지막으로 국적불명의 젊은 처녀 한 명이 탄다. 어디로 가든 혼자 여행하는 여인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묘한 동족 의식을 느낀다. 국적과 관계없이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나의 가족이다. 사실 낯선 지역에서 무서운 것은 불안과 공포가 아니라 고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을 동반자로 삼아 온전히 자기 자신을 느끼며 세계를 탐험한다. 그녀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낸다. 


시내를 벗어나자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당연히 중앙선은 없다. 오고 가는 차들이 적당히 알아서 달린다. 물웅덩이를 만나면 몸은 버스 천장을 향해 점프를 한다. 


옆에서 오토바이도 달린다.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어머니는 딸을 안고 식구 네 명이 한 오토바이를 타고 위태롭게 달린다. 어린 소녀들은 빨랫감을 들고 메마른 길을 걸어간다. 길가의 열대나무와 풀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푸른색을 잃어버렸다. 그렇지만 조금 더 멀리 보면 눈부신 하늘과 순수 그대로의 자연이 펼쳐진다. 콘크리이트 건물과 전봇대도 없는 흙과 물, 나무와 산뿐이다. 나는 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에서 또 다른 세계를 느꼈다

대략 2시간 정도를 달리자 중간 휴게소가 나타났다. 이곳은 각국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외국의 배낭 여행자들이 과자와 음료수, 바케트 등을 먹고 있고 한쪽 구석에서는 사랑스러운 금발 미녀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화장실은 예상과 달리 돈을 받거나 혐오스러울 정도로 더럽지 않다. 도리어 반들반들 바닥을 열심히 닦아서 너무 깨끗하다.


나는 탄산음료수 하나를 사고 열심히 바케트를 만들고 있는 소녀에게 빵을 주문했다.

그녀는 별다른 반응도 없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매우 정성스럽게 두껍고 긴 빵 안에 갖가지 양념들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닐로 싸서 내게 전해준다.          

나는 입을 쩍 벌리고 와락 씹어본다. 달콤한 맛이 혀끝에서 올라온다. 그런데 너무 달다. 버스는 다시 2시간의 산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방비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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