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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땅, 라오스를 가다

7. 자유인의 휴식처,  방이엥

비엔티앙에서 떠난 지 4시간 만에 방비엥에 도착했다. 

오후 1시가 넘었다. 다시 내일 비엔티안으로 돌아갈 미니 버스를 예약하고 종업원에게 인티라 호텔 위치를 물었다. 복잡한 영어를 구사한다. 쉽게 해독이 되지 않는다. 

급기야 그는 뚝뚝을 이용하라고 하며 말문을 닫아 버린다.

 쉽게 말해서 택시 타고 가라는 것이다. 내가 미적미적하자 다시 마을 지도를 펼쳐놓고 호텔 위치를 알려준다. 정말 가까운 곳이다.


 배낭을 메고 길가로 나선다. 강한 햇빛이 두 눈을 찌른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압박한다. 마을은 굉장히 작다.


나는 가게 처마 밑으로 숨어 들어간다. 도로는 고요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간혹 오토바이가 달린다. 태양이 두렵지 않은 아이들이 빼꼼 몸을 내밀고 거리로 나선다.


불과 100미터쯤 이동을 하자 인티라 호텔이 보인다. 역시 개방형의 로비 안에 카페가 꾸며져 있고 구석구석에 회전 선풍기와 열대성 식물을 배치하여 청량감을 준다. 현대식 호텔은 아니고 원주막 형태의 바깥으로 열린 구조이다. 넓은 더블 침대, LG 텔레비전, 화장실 내부를 엔틱하게 꾸며두었다. 에어컨은 시원하게 돌아간다. 

단지 아쉬운 것은 역시 냉장고가 없다는 것이다. 

저렴한 숙박료 때문일까? 미지근한 생수만이 테이블에 놓여 있다.


다시 호텔 밖으로 나와 자전거 대여점으로 갔다. 여권을 맡기고 산악자전거 대신 바구니가 있는 일반 자전거를 빌렸다. 어디로 갈 것인가. 탐 푸캄, 즉 블루 라군으로 가기로 했다. 쏭 강 다리를 찾아 나섰다. 많은 차량과 뚝뚝, 오토바이, 버기카를 타고 상판을 널빤지로 엮은 다리를 건너고 있다. 나처럼 자전거를 탄 여행자는 거의 없다.



통행료 2천킵을 냈다. 맞은편에서 차량들이 몰려와 위태롭고 위험한 자전거 횡단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건너 후 한숨을 돌리고 다리 밑을 보자 동네 개구쟁이들이 물장난에 여념이 없다.        


웃통을 벗어던진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들이 어울려 물장구도 치고 장난도 치면서 즐겁게 놀고 있다. 내 어릴 적 진주 남강 다리 밑에서 수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땅히 놀 만한 오락물들이 없었던 가난한 어린 시절의 유일한 놀이터는 자연일 수밖에 없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있다. 그 녀석들이 벗어놓은 옷들이 발 밑에 보인다. 



방향을 블루 라군 쪽으로 잡자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 낸 석회암 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라오스의 계림이라고 불리는 팟타오 산이다.

길은 자갈로 촘촘하게 깔아 도로를 만들었다. 자전거 바퀴가 돌 때마다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도로 주변의 전봇대는 야자수와 키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한없이 넓게 펼쳐진 들판과 기암괴석과 같은 산등성이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리고 맞은편 쪽에서는 쉴 새 없이 오토바이들이 질주한다.


주변의 풍경을 보느라 자전거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페달을 조그만 밟아도 멈추고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다. 

블루 라군으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면 무릉도원과 같은 신선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날씬한 싸움닭 무리들이 나타나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송아지들이 앵글에 잡힌다. 방비엥의 소들마저 영혼이 자유로워 보인다.

블루 라군으로 가는 길은 온통 땡볕이다. 그 길을 육체의 동력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항상 낯선 길에서 찾아가는 목적지는 멀게 느껴진다. 한발 한발 페달을 밟으며 경사진 길을 오를 때마다 허벅지 근육이 팽팽해지고 입안에서 단내가 난다. 그때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마을 처녀가 미소를 보낸다.
그 힘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다. 


마침내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갈 때 바람을 가르며 느끼는 속도감과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전거 핸들은 심하게 비틀거리고 뜨거운 자갈길을 달리는 바퀴가 행여나 펑크가 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묘한 웃음이 나면서 짜릿한 쾌감이 아랫도리에서 올라온다. 


그렇게 얼마쯤 가자 마을 한 곳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벼락 조차 없는 낡고 허름한 집 앞에서 무슨 놀이인지 모르겠지만 꼬마 아이들이 모여 있다. 구슬치기인지 돌치기인지 특별한 놀이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윗옷은 입지도 않고 맨발로 서 있는 계집아이와 고추를 내놓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보인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들은 아무런 낯선 여행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사진 찍기를 청하자 각자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한 녀석이 어린 동생을 앞에 내세워 모델로 삼기도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이는  'Money'라고 말했다. 사진 촬영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순수의 나라인 라오스에서 그것도 수도 비엔티안에서 160 km 떨어진 산간벽지의 방비엥에서 이 어리고 어린 순박한 아이의 입에서 돈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 몰랐다.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바뀌면서 아이들마저 돈의 노예로 변질되는 듯해서 마음이 씁쓸했다. 나는 애써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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