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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의 놀이터, 블루 라군

8. 세계인이 벌거 벗고 노니는 라오스의 벽계수 

낡고 허름한 집들이 길가를 따라 줄지어 있다.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엮은 울타리. 

그 울타리를 뼈대로 삼아 옷을 입은 듯 울긋불긋한 빨래들이 춤을 춘다. 

당연히 대문은 없다. 황톳빛 마당과 열대성 나무들은 먼지를 조금씩 먹고 자라고 있다. 

한 아낙이 마당에서 불을 지피고 있다. 집 앞의 하천에서는 벌거벗은 아이가 오후의 태양 아래 혼자만의 물놀이에 빠져 있다. 

송아지 두 마리는 어슬렁어슬렁 무법자처럼 도로 중앙을 배회한다. 

차들은 조심조심 그들이 도로를 벗어나는 것을 확인한 후 질주한다.  


모든 것이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블루 라군 가는 길.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행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마을 어귀를 빠져나가자 탁 트인 전망이 다가온다. 드넓은 하늘과 들판.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의 어울림. 

정말 라오스의 계림이라 할 만하다.


블루 라군으로 가는 무릉 도원의 길


비포장 길을 따라 열심히 페달을 밟는 자전거 여행자가 보인다. 

마치 속된 세상을 과감히 버리고 떠나는 선사의 모습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지금 이 풍경을 바라보고 마음속 벅찬 감정을 느낄 뿐이다. 거친 땅 위에 풀들이 자라고 들판에선 한 소녀가 자신의 밭 위에서 허수아비처럼 서있다.

그리고 작은 연못과 습지대가 나오고 길가의 버기카가 그늘 아래 쉬고 있다. 

이제부터 블루 라군이다.


 


넓은 주차장에는 뚝뚝과 픽업트럭, 오토바이들이 있다. 

나는 입장권을 주고 들어선다. 여기저기 한글 간판이 보인다. 여전히 태양빛은 강하다. 

산은 낮지만 가파르고 다양한 열대 나무들이 산을 에워싸고 있다. 아직 푸른 물결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과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즐겁게 물장구 치는 여행자들.


블루 라군이다. 

대중 매체를 통해 눈여겨본 곳. 라오스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던 유명 관광지. 

세상 시름 모두 잊고 낙원의 별세계에서 노니는 세계인을 만나고 싶었던 곳이다. 

벌거벗은 사람은 원시의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다. 산 아래 흐르는 계곡물이 푸른빛을 띠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다. 한국의 산천은 강바닥 모래를 헤아릴 정도의 맑고 투명한 빛이라면 이곳은 푸른 물 그 자체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렇게 감동스럽지 않다. 그저 단지 많은 사람들이 물장난 치는 장면에 불과하다.
우리의 시골 하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일 뿐이다.


강변에 난 늙은 나무 가지에 무거운 인간들이 올라가 추락의 쾌감을 느끼고 있다. 

저 나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몸 안으로 품었을까? 

나무 가지는 검게 비틀어지고 인간들이 매달아 둔 밧줄 때문에 자꾸만 아래로 축 늘어진다. 

밑동부터 널빤지를 박아 사다리를 만들고 다이빙대 역할을 하는 가지에는 사람들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각목을 박아 두었다. 그 오랜 나무는 온전한 자기 나무가 아니다. 

단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냥 예전 그대로의 나무였다면 저렇게 시달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둑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고 낙하 장면을 공포스럽게 지켜본다. 

블라 라군은 국경과 인종의 차별이 없는 놀이터이다


금발 미녀들은 시원스럽게 벌거벗었고 동양의 여자들은 이것저것 불편한 옷가지들로 몸을 가렸다. 

동서양의 차이이다. 풀밭 위에는 술 취한 외국인이 팬티만 걸치고 드러누워있고 일광욕을 즐기려는 듯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도 보인다. 그리고 원두막 아래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라오 맥주를 마시고 있다. 

모두들 한가로운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콘크리이트 벽돌과 시멘트 하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블루 라군이다. 

물과 나무, 풀밭 위의 자연인들이 만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블루 라군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있는데 강 아래쪽은 한산하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간혹 겁 많은 금발 미녀가 튜브를 타고 조심스럽게 수영을 즐기고 있다. 나는 풀밭 위에 주저앉아 라오 맥주를 마셨다. 물보다 맥주를 더 마시는 듯하다. 낮술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속세에 묻힌 인간들의 번뇌들이 일시에 망각되는 별천지의 풍경 앞에서 한 잔의 술은 여행자의 여유로움이다


라오스 과자를 안주삼아 씹으며 라오 맥주를 꿀꺽꿀꺽 마신다. 

목울대를 지나 오장육부를 휘감아 돌고 항문으로 직행하는 느낌이다. 엉덩이 밑 부분이 시원하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풀밭 위에 서 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이럭저럭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길을 생각하니 돌아갈 길이 아득하다. 어디 자전거를 픽업차량에 싣고 가고 싶다. 

아니면 뚝뚝 뒤꽁무니에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힘으로 페달을 밟고 돌아가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블루 라군에 발 한 번 담가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쉽다.




뒤돌아 가는 길. 작은 실개천이 하나 보였다.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 본다.

말랑말랑한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온다. 발목까지 시원하다. 비록 블루 라군의 물속에 풍덩 빠지지는 못했지만 작은 개천에서 위로를 찾는다.

서쪽 하늘을 보니 태양은 저물어 간다. 도시의 태양보다 이곳의 태양은 태양 그대로이다. 

태양 하나 오직 빛난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해가 저무는 들판에서 소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태양과 바람, 소와 흙,  자연 그대로의 방비엥


나를 알지 못하는 이곳에서 완전한 고독을 느낀다. 나의 집은 여기에서 버스로 4시간을 이동하여 비행기로 5시간을 날아가야 한다. 철저하게 혼자인 나이다.


지나가는 뚝뚝과 오토바이들은 모두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데 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페달을 밟고 있다. 해는 지고 있고 이 길에 혼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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