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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비엥으로 돌아오다

9. 해는 저물고 내 자전거는 지쳤다.

오직 서녘 하늘의 태양만이 이글거리는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저 태양은 내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반평생을 살아온 나의 모든 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기억을 안고 지구의 반대편으로 사라지는 태양. 나의 등을 떠밀며 어서어서 돌아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뒤돌아 보니 하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높은 산들이 태양을 맞고 있다. 

그리고 다시 페달을 밟았을 때 많은 소들이 들판에서 풀을 뜯으며 어슬렁어슬렁 도로 쪽으로 걸어 나왔다. 

어미 소 주변에는 작고 귀여운 송아지들이 줄지어 따라나선다. 그들도 해가 지기 시작하자 집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나는 소들과 걸음을 맞추며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소들은 낯선 이방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를 무시한 채 자기 갈 길을 갈 뿐이다.

이때 블루 라군 방향에서 자전거 두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젊은 청춘 두 명이었다. 좀처럼 자전거 여행자를 보기 어려운데 나는 찐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에게 웃음을 보냈다. 일본인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잠깐 인사를 하고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이내 몇 장을 찍어 주더니 튼튼한 다리로 휑하고 사라져 갔다.


먼지 나는 도로를 열나게 달리고 있을 무렵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진정한 블루라군을 만났다.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 타잔처럼 줄을 매달려 개울 위를 날고 있었다. 동네 앞을 흐르는 강물은 블루빛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정한 블루라군이었다.



해가 지고 있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냥 즐겁게 놀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노는 것이 공부인 듯하다. 꼬마 녀석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고 물가에서는 벌 것 벗은 어린아이가 있고 두 여인은 빨래를 하며 몸을 씻고 있다

          



아이들의 집은 목조 건물이다. 시멘트나 콘크리이트는 찾아볼 수 없다. 울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생활공간은 여러 동물과 파충류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지상에서 1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한 어머니는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고 역시 아이들은 개들 마당에서 함께 뛰놀고 있다.

어떤 집은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풀 한 포기 없이 온통 흙투성이다. 군데군데 돌멩이들이 깔려 있다. 그리고 한 자매가 집 앞에 서 있다. 



다소 낡은 전통 치마인 신을 입은 언니와 고양이가 그려진 붉은 민소매를 동생은 입고 있다. 

나는 그녀들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동생을 앞세우고 아주 익숙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Money라는 단어. 순수하게 바라보았던 내 눈빛은 흔들리고 황급히 그녀들에게서 물러났다.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듯 달렸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처럼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돈을 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들었다.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일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거지 동냥을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차원에서 모델료를 요구한 것이다. 라오스라 하여 무조건 순수의 올가미를 씌울 수는 없는 것이다. 


가난한 그들은 이 블루 라군으로 달려가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흥청망청으로 먹고 마시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과 자본의 욕망이 조금씩 싹트지 않았을까. 이미 방비엥은 원주민의 땅의 아니라 여행자들의 특별 지역이 된 지 오래이다. 언제까지 라오스가 순수의 나라로 남아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지나 온 길 위에 붉은 태양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나는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전신주에 걸린 노을을 바라본다.




방비엥으로 돌아오자 네온사인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뜨거운 한낮의 오후가 일몰과 함께 사라지자 마을에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인구 3만 명에 불과한 이곳은 이미 여행자들이 점령한 지 오래이다. 서양인과 한국인들이 대부분 차지한다. 동양인은 거의 한국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식당과 매점의 간판마저 한국어로 적혀있다. 심지어 바케트와 샌드위치, 커피 메뉴판에도 한국어 투성이다. 여기가 라오스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꽃보다 청춘'의 추천 메뉴마저 적혀 있다. 식당은 불야성이다. 여행자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왁자찌껄 떠들고 있다. 모두 유쾌하고 행복해 보인다. 내가 아는 그들은 아무도 없다. 철저히 혼자이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다. 온전히 자립적인 인간으로 행동할 뿐이다. 나는 그다지 여행자들이 없는 국숫집에서 뒤늦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마실 나온 아저씨처럼 어슬렁 거리를 거닐었다. 저녁 노점상들도 일제히 몰려나와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은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서로 경쟁하듯 자신의 가게로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저 손님이 물으면 답변을 하고 주문을 하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준다. 다소 요리 도구와 재료들이 비위생적으로 여길수 있지만 길거리 음식은 바로 그 맛에 먹는 것이다.


나는 노점에서 라오스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이곳에서 아직 커피 한 잔 하지를 못했다. 과연 어떤 맛일까. 역시 아주머니는 아주 천천히 정성스럽게 한 잔의 커피를 내놓는다. 한 컵 가득 담았다. 그리고는 설탕을 넣을 것인지 물어본다. 한국식이라면 당근이다. 그러나 나는 후회했다. 설탕이 없어도 커피는 매우 달았다. 라오스 커피는 쓴 맛보다 단 맛이 강했다. 하루의 피곤이 달콤한 커피 향에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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