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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의 새벽과 아침

10. 고요한 쏭강 주변과 새벽 시장 풍경

다시 부스스 일어났다. 과연 이곳에서 볼 수 있을까? 라오스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탓발의 수행 장면이다.

유독 탓발 행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일까? 꼼꼼히 생각해 본다. 


일체의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오직 깨달음의 수행에 몰두하는 높은 정신의 경지. 그리고 존경과 베풂의 정신을 신새벽에 실천하는 라오스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 경건한 행위. 나도 옆에서 모든 순간을 지켜보며 찰나의 순간이라도 수행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오욕칠정으로 오염된 마음을 씻고 싶었다.

새벽 5시 30분. 문을 열고 나서자 아직 어둠 그대로의 새벽이 나를 맞이한다.

한낮의 더위는 하늘 밖으로 물러나고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돋는다. 바람은 없고 고요하다. 벌써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주민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보인다. 화로에 큰 냄비를 올리고 육수를 끓이고 있다. 붉은 불길이 어둠을 잡아먹고 있다.

나는 사원 근처로 걸어갔다. 그리고 큰 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음식 공양을 준비하는 주민들을 찾아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의 개만이 나를 응시한다. 역시 이곳에서도 탓발 행렬은 볼 수 없었다.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나는 길가 주변에서 고요한 아침을 맞고 있다.



아침이 밝아오자 여행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뚝뚝을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다. 오토바이가 재빠르게 달려간다. 나는 천천히 거닐기 시작한다. 어제저녁의 소란함과 분주함은 보이지 않는다. 전신주 사이로 병품처럼 산들이 어깨를 걸고 우뚝 서있다. 어느 사원 앞에 이르자 새 떼들의 합창소리가 들린다.

일제히 나무 위에서 공중 군무를 펼치고 있다. 작은 점들이 일제히 모였다가 흩어진다. 

그 아래 부처님은 염화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쏭 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강 물결 위로 피어나는 아침 안개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 더 산을 깊이 보고 싶었다. 나는 산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묵묵히 모든 것은 받아들이고 한치의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동의 몸체. 산의 품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동네는 예전 그대로의 가옥과 신축 중인 건물의 뼈대도 보인다. 낡은 목조 건물은  넓고 크다. 어김없이 오토바이와 픽업트럭. 빨래가 2층에서 나불거린다. 마치 우리네 70년대 판자촌의 모습과 같다. 거리는 예상외로 깨끗하다. 3층 높이의 공사장 건물로 올라가 멀리 산들을 바라본다. 옆집 지붕에서 닭 한 마리가 울고 있다. 이방인의 침입을 경고하는 것일까. 



밝아 오는 아침 하늘 속으로 공중에서 독참파를 꽂아 놓은 듯 산들이 한눈에 보인다.

완만한 능선이 아닌 급격히 수직을 이룬 형태는 마을의 지붕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골목길로 나서자 동네의 요모조모가 보인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듯 아무런 화려한 장식 없이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미장원이 있다. 울타리 없는 목조 가옥들이 이어지고 일찍 감치 대문 앞에 나선 늙은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리고 큰 개들이 길 가운데 엎어져 있고 꼬리를 치며 어슬렁 거린다.      


그리고 한 골목길을 돌아서자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저 멀리서 동네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물건을 흥정하는 모습이 보인다. 

방비엥 새벽 시장이었다. 


여행은 우연성이 반복될 때 색다른 경험과 감동을 얻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자 벌써 생선 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바나나와 호박, 야채, 고추, 파, 토마토, 당근, 양파, 생닭, 열대과일, 갓 잡은 물고기들, 정체모를 고기 덩어리 등 아주머니들이 자판을 깔거나 수레를 물건을 실은 채 장사를 하고 있다.


아주 작은 동네 시장이다. 아마도 이들 시장 사람들은 멀리 다른 부락에서 왔을 것이다. 낡고 허름한 옷차림. 맨발과 슬리퍼.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피곤함. 

시장은 조용하다. 묵묵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릴 뿐이다. 동네 주민들이 아침 준비를 위해 물건을 흥정하고 계산을 할 뿐 시끄러운 호객행위는 없다.



방비엥의 아침처럼 마을 시장 또한 고요하다. 나는 다시 시장을 빠져나와 길을 앞으로 나아가자 틈새로 좁은 길이 놓여 있다. 



그리고 나무판자로 이어 붙인 다리가 보인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밟으며 다리를 건너자 쏭 강의 물결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아침 하늘을 향해 높고 높은 산이 수직으로 뻗어 있고 쏭 강은 산의 그림자를 안고 흐르고 있다. 강물은 청량한 물 냄새를 풍기며 반짝인다. 나무로 만든 다리는 하나의 조각품처럼 느껴진다. 이 아침의 고요함은 방비엥의 백미이다.


여행자의 우연한 발걸음은 경탄할만한 풍경을 안겨준다. 남들이 모두 가는 정해진 길은 감동이 적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 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 방갈로 단지를 지나 산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 목적 없이 그저 지남철처럼 끌려갔다. 우연히 동쪽 하늘을 바라보니 태양빛이 산란하여 지상을 덮어오고 열기구가 높이 솟아 있다.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때를 맞춰 꽃들이 활짝 피었다. 그리고 넓은 들판이 나오며 산은 자기 온몸을 드러내고 나를 맞이 했다.



나 만의 정원이었다. 오직 나무와 풀과 흙길, 노랑나비만이 날고 있는 들판이다. 

그 어떤 인공물도 들어있지 않는 순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자유롭다는 생각,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들판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산을 바라보고 내가 걸어온 흙길을 바라보았다. 이 고독의 들판에서 진정한 자유정신을 느낀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들판에서 살아간들 무엇이 두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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