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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의 마지막 하루

11.  바케트 샌드위치와 모터 보트에 누워 강을 따라 가다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공사 중이다. 철근과 콘크리이트들이 망치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올라간다.


아침의 고요함은 사라졌다. 다시 인간의 시간이다.

일찍부터 노천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팬 케이크, 버거, 샌드위치 등을 팔고 있다. 나는 가게 앞에서 서성거려보지만 어느 것 하나 사지 못한다.

이면 도로로 접어들자 방비엥 전통가옥들이 눈에 띈다. 대부분 나무를 덧댄 방식이다. 허름한 울타리, 집 주변의 넝쿨 식물과 꽃나무. 자연 속에 인간이 들여 사는 듯하다.

다시 중앙도로로 나오자 바케트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나는 어느 여인의 가게 앞에서 빵을 주문했다. 두툼하고 긴 바케트 안에 토마토와 각종 야채, 돼지고기, 치즈 등을 넣은 샌드위치이다.

여인은 아주 천천히 바케트 샌드위치를 만든다. 나는 의자에 앉아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마도 내가 오늘 첫 손님일 것이다. 하루의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빵을 건네받는다.    

                

어린 소녀의 등굣길, 이른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바케트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여인


호텔로 다시 돌아가는 데 귀여운 계집아이가 앙증맞은 교복을 입고 책가방과 음식 보다리를 들고 제 어미 뒤를 따른다. 바로 옆 또 다른 바케트 가게이다. 할머니부터 갓난아기까지 벌써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예쁜 머리띠를 한 아이가 내게 미소를 보낸다.




식당 겸 호텔 로비로 돌아오자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여행자들이 식사 중이다. 그 모습을 보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생각했다. 아뿔싸 그것도 모르고 빵을 샀구나.

무엇을 먹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지만 호텔 조식을 먹기로 했다. BAR 겸 인포 데스크로 이용하는 다용도의 로비에서 아침 식사는 이뤄졌다.

작은 뷔페 방식으로 과일과 커피, 우유, 음료수 등이 제공되고 메인 메뉴 5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나는 2번인 스크램 볼 에그를 선택했다. 곧이어 바케트 빵과 버터 잼이 나왔다. 그리고 토마토와 삶은 달걀을 매치한 '바케트 속'이 등장했다.

나는 빵을 갈라 속을 넣고 버터 잼을 발라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했다. 아직 비엔티안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3시간 정도 남았다.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모터보트를 타기로 결심했다. 레저 활동의 메카인 이곳에서 뭔가를 하나 즐기지 못하고 떠난다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길고 긴 쏭 강을 유 유하게 유람하고 싶었다. 나는 여기저기 액티브 투어 상점을 기웃거리며 수소문을 해본 결과 혼자서 탈 경우 그냥 선착장으로 가서 타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길이는 4~5 미티, 폭은 1미터 정도의 모터보트가 자갈밭에 정박돼 있다. 나는 배 한가운데 마련된 앉은뱅이 의자에 앉았다. 모터보트는 서서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쏭 강의 바람이 귓전에서 쏜살같이 지나간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소리가 청량하게 들리고 강 언저리의 풍경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아름답다.

높게 수직으로 뻗은 카이스트 지형의 산들과 방갈로 단지, 공사 중인 콘크리이트 철골도 보인다. 노련한 뱃사공은 물의 길과 깊이를 알고 배의 흔들림과 부딪힘이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강어귀 마을을 벗어나자 완전한 자연 그대로이다. 그 어떤 인공 건축물들도 보이지 않는다. 강물과 수풀, 나무, 하늘, 산 그리고 배 한 척 만이 아침의 풍경을 이루었다. 나는 소풍을 나온 신선처럼 한가롭게 경치를 바라본다.

              

저 멀리 벌거벗은 서양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여자는 풍만한 몸매에 검은색 비키니를 입고 작은 바위 사이를 거닐고 있다. 무엇을 하는 것일까. 그 옆에 남자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지켜보며 물살을 헤치고 있다. 그들의 나체에 가까운 몸뚱어리가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물아일체의 원시적 아름다움이다.


이런 여행자의 한가로운 물놀이와 함께 엉덩이에 대바구니를 달고 허리를 구불려 다슬기를 잡는 여인들과 사내의 모습도 보인다. 즐기는 자와 살고자 하는 자의 공존이 쏭강에서 이뤄지고 있다.


쏭 강 일대의 다양한 풍경들



마주 오는 보트에서 아주머니들이 내게 손을 흔든다. 한국인들 같다. 사실 강 주변 여기저기에 한글 간판과 광고문들이 종종 보인다. 그리고 강가에 나온 여인이 아이를 안고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손을 내게 흔든다. 어디서 저런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오직 현실의 만족을 아는 자만이 행할 수 있는 배려의 미덕이다. 나도 손을 흔들어 보인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늑하다. 여기에 혼자 있다는 생각.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고독의 선상에서 나를 바라본다. 난생처음 밟은 이 땅에서 마음의 안식을 느낀다. 그리고 서서히 잠이 몰려왔다.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다. 이 머나먼 곳에서 사라진다고 한들 아무런 여한이 없을 듯하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온 나는 호텔로 돌아갔다. 이제는 방비엥과 이별이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알 수는 없으나 이 모든 풍경을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담 길을 따라 걷는데 어디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의 목소리이다.

전혀 학교라고 생각할 수 없었는데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분명 학교이다. 우리네식 콘크리이트와 시멘트로 발라 만든 높은 건축물이 아니라 1층짜리 단층으로 회색빛 함석지붕을 올리고 하얀 담벼락을 쌓은 건물이다. 나뭇가지가 길게 뻗은 녹음 아래 아이들이 타고 온 자전거들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다. 운동장은 온통 흙바닥이고 군데군데 작은 풀들이 잔디를 대신하고 있다. 아이들은 노는 시간인지 뛰놀기 바쁘다. 어디를 가더라도 아이들은 놀고 만 있다. 축구 골대는 'ㄷ'자 모양으로 철봉을 박아 두었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어렸을 때 놀았던 일명 '오지미' 놀이를 하고 있었다.

헝겊 안에 쌀겨를 넣고 공 모양으로 만들어 사각 안에 있는 아이를 맞히는 게임이었는데 어떻게 이곳 아이들도 똑같은 놀이를 하고 있는지 깜짝 놀라울 따름이었다.


                    



학교 옆 예쁜 꽃이 핀 병원을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배낭을 챙기고 뜨거운 도로로 나왔다. 이제 다시 비엔티안으로 돌아가 오늘 밤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아직 버스를 타기 1시간 정도 남았다. 아침에 보아 둔 한국 식당을 찾았다.

시실리 식당. 나는 뚝배기 백반을 하나 시켰다. 현지 음식을 먹어 보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여행의 힘을 얻으려면 조선의 밥을 먹어둬야 한다. 이제 내 나이도 생소한 음식을 먹기에 부담스럽다. 제법 그럴싸하게 음식이 나왔다. 마늘과 된장 뚝배기, 김치와 멸치조림, 두부와 쌍추 등 우리 맛 그대로의 맛있다. 나는 정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그 만족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시 여행의 힘이 생긴 듯하다.        


나는 계산을 하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자 '어머 한국분이세요'라고 한다. '아니 한국 사람이 뚝배기를 먹지 누가 먹어요'라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주인인듯한 여인이 '아이들이 라오스 사람 같다고 해서요'라며 웃는다.


듣기에 기분 좋기도 하고 약간 언짢기도 하다. 겨우 4일째인데 벌써 라오스 사람처럼 보이다니 그리 나쁘지도 않다.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 여인에게 행복이 있기를 바라며 다시 땡볕으로 나왔다. 햇빛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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