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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보고 또 보고 #3

-- 모모치 해변에서 나카스의 야타이까지


#후쿠오카 타워와 모모치 해변


텐진역에서 1A번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타워로 이동했다.

버스는 높은 고가에 위치한 '도시 고속도로 환상선'에 올라서자 '하카타 부두'가 한눈에 들어왔고 크루즈 선이 정박된 '하카타항 국제 터미널'도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밥사발을 엎어둔 듯한 '소프트 뱅크 돔 구장'을 지나자 '힐튼 호텔 sea hawk'가 갈매기의 날개처럼 바다를 향해 펼쳐져 있었다.

이윽고 모모치 해변에 도착했다.


바닷가의 태양은 눈이 부셨고 234미터의 후쿠오카 타워는 장검의 칼날처럼 공중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손가리개를 하고 그 높이의 끝을 쳐다보았을 뿐 입장료 800엔을 내지 않고 1층의 기념품 가게만 두리번거렸다. 예전 도쿄의 '스카이 트리'와 오사카의 '우메다 공중정원', 북해도의 '삿포로 TV 타워'에서 바라본 정경은 기대와 달리 별 볼일 없는 실망감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한산한 인공의 해변과 일본도의 칼날같은 후쿠오카 타워


1층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를 까먹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후쿠오카 타워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자 바로 모모치 해변이 펼쳐졌다.


하와이 모래를 공수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했다는 해변인데 특별히 눈요깃감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모두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잡담에 빠져 있었다.

그 사이로 검은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 검은 양말과 검은 구두, 그리고 흰 가방을 둘러 맨 후쿠오카 소녀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해변가를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들의 검은 단발머리는 바람에 휘날렸고 저 멀리 산등성이에는 국경의 하늘을 넘어온 비행기들이 활주로로 내려앉고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드문드문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아사히 맥주를 파는 상점들도 보였다.

나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 해변가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뽑아 들고 소나무에 기대어 서서 가만히 바다를 응시했다.

바다의 물결은 고요했고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렀다.


그 하늘 아래 인공 섬으로 조성한 유럽풍의 'marizone'이 보였다. 미국산 하와이 모래와 지중해 양식의 건물이 하카타 만에서 만나 후쿠오카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재탄생한 셈이었다.


나는 'sea side momochi jigyohama'해변을 바라보며 오솔길을 따라 '후쿠오카 돔'을 향해 걸어갔다.

해변가의 한 여인은 청치마를 나부끼며 혼자서 방파제를 걷고 있었고 그녀의 '버킷햇'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 옆으로 자전거를 탄 한 남성이 고양이처럼 지나가고 여전히 비행기는 공중에서 지상을 향해 머물고 있었다. 모모치 해변. 그곳은 관광 명소라기 보다 단지 쉼을 위한 휴식처일 뿐이었다.

후쿠오카 타워를 뒤로 하고 'hii river'건너자 후쿠오카 돔이 거꾸로 엎은 팽이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카스 야타이


나는 포장마차를 사랑했다.

바깥과 안쪽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비닐 천막에서 독한 소주 한 잔과 닭똥집 안주 한 접시면 몽롱한 세계로 접어들 수 있었다.


감각의 현실은 분해되고 오감이 활짝 열리면서 '디오니소스'가 포도주 한 병을 들고 포장마차의 내게로 찾아왔다. 여름 장마 빗방울 소리가 기관단총 쏘듯이 천장에 쏟아지거나 한 겨울 찬바람이 괴물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달려갈 때 나무 의자에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술은 천국의 맛이다. 생채기 난 삶의 비루함과 끈적끈적한 외로움이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탈주의 환각을 느끼는 포장마차.


언젠가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후쿠오카의 '야타이'를 본 적이 있다.

나카스 강변의 포장마차, 하나의 관광코스가 돼버린 야타이



봄날 사쿠라가 핀 강변에 가로등 불빛은 달처럼 떠오르고 휘황찬란한 간판 아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안주 거리들. 도란도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그것은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장소였다.


캐널시티에서 '아쿠아 파노라마'를 즐겁게 감상한 후 숙소로 돌아가기 전 근처 '야타이'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돌아갈 요량으로 포장마차를 찾았다.

벌써 나카스 강변에 백열등을 밝힌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루를 마친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이 어울려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떠드는 목소리가 밤을 타고 넘실거렸다.

강변 좁은 통로로 많은 관광객들이 걷고 있었고 역시 한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들도 야타이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나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포장마차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젊은 친구들도 보였고 나는 그들의 눈짓을 피하며 강변 펜스에 기대어 오늘 하루를 마감할 야타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내 한자리 앉아 보지도 못하고 두 번이나 문전박대 당한 야타이


그중 이상하게 아직 단 한 명의 손님도 받지 않은 포장마차가 있었다.

흰 턱수염이 난 중늙은이가 운영하는 야타이였는데 다소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매상 좀 올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양반 오늘 운 좋은 거야. 아무도 당신 가게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내가 오늘 좀 팔아줄게'라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대뜸 인상을 험하게 짓더니 뭐라고 내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조금 당황했는데 대충 들어보니 "여긴 일본인만 들어오는 곳이야. 한국인은 받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순간 이건 뭔가 하는 당혹감이 들었다. 선의의 마음으로 입장했는데 문전박대를 당하다니 기분이 묘하게 틀어졌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분노가 일어났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 없으니 꾹 참고 다른 포장마차를 찾아보니 한 곳에 여분의 좌석이 보였다.

다시 그쪽 의자에 앉으려 하자 주인 양반이 또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한국인과  중국인은 받지 않아"

내가 잘못 들은 것일까?


그동안 홋카이도와 도쿄, 오사카와 교토 등을 여행해 보았지만 이런 불친절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대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야타이에 관한 정보에는 이런 언급조차 없었다.


그들의 말을 오해한 것은 아닐까? 혹시 혼자라서 안된다는 말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두 번이나 연거푸 입장 불가라는 문전박대를 당하니 단순한 오해 같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품었던 '야타이'에 대한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캐널시티의 즐거움과 후쿠오카 여행의 기쁨마저 송두리째 달아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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