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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문장들

- 이희안 지음

여행의 시간, 그 길에서 만난 여행의 문장들




세상에나

난 그렇게 이쁜 여자는 처음 봤다.


그것도 이역만리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그 여행자 거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미녀를 만났다네.

천의무봉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일곱 빛깔 무지개 모양으로

뻔뜩뻔뜩 발산하며 하늘하늘 걸어오더니 냉큼 내 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


기절초풍할 아찔함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와 달리

금발의 그녀는 농부님 무 뽑듯이 책 한 권을 허리춤에서  쑥 뽑더니

다소곳한 자세로 책을 읽어 내려가지 않는가?


참으로 아름다움 위에 아름다움이 철철 흘러넘치는 

기가 막힌 장면이었다. 이리저리 별의별 인종들이 들락 나락 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아,  나는 지금도 비엔티안의 눈부신 금빛의 사원보다 책 읽는 금빛의 그녀가 더욱더 기억이 난다.

사실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의 문장들 작가, 이희인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일신이 한가하지 못해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 힘들다.

나도 일전에 배낭 깊숙이 책 몇 권을 넣어서 폼좀 잡아 볼까 했지만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다.


그런데 ‘버스나 기차, 비행기나 배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불가사의한 사람이 있다.
그는 ‘실크로드와 티베트로 가는 기차와 버스에서 박상륭의 문제작 ‘죽음의 한 연구’를 독파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닥터 지바고’ 등을 읽은 사람이 있는데 그야말로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이상야릇한 활자 중독자인셈이다.


그는 바로 여행자의 독서, 세 번째 이야기 ‘여행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쓴 이희인이다.

저자는 광고와 사진, 여행가 등의 영역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이미 9권의 책을 낸 베테랑 작가이다.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작가’는 총 35권의 책 속에 등장하는 특정 문장을 여행의 에피소드와 함께 수록해 두었다. 덤으로 그 옛날 ‘선데이 서울’ 대형 브로마이드급의 사진들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져 있다.


이럴 테면 네팔의 룸비니를 여행하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의 특정 구절을, 쿠바 아바나를 방문하여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읊조리는 방식이다.

줄줄이 사탕 방식으로 여행지와 책, 특정 문장들이 이어지고 가독성 높은 활자와 아무리 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풍경 사진은 아주 덤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코로나 시대. 지면을 통한 순간이동과 활자를 통한 세계 탐방이 이뤄지고 책 속의 문장까지 맛볼 수 있는 이 한 권의 책.


이 무료한 가을, 이 한 권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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