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병관 지음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위로의 미술관
살아내는 삶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
한 해 두 해 지천명을 넘어 반평생 이상을 살아온 이력이지만 온갖 지혜와 묘수를 발휘해도 크고 작은 일에 쉽게 상처받고 방황한다.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어지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해질 무렵부터 술을 마시며 몸 안의 귀신을 달래 보지만 위로는커녕 고통만 가중된다.
아직 세상에 내놓은 것이 적고 낡은 정신의 창고마저 점점 허물어져 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마땅히 그 어떤 위로처를 찾아 길을 떠나거나 깊게 경청하고 무겁게 입을 여는 현자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혹은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살면서 운명에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소진한 위인의 삶 속에서 위로의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병관의 ‘위로의 미술관’은 위대한 화가들의 위태롭고 절망적이었던 삶을 조망하고 있다. 그 조망의 푯대 위에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세계를 완성한 예술가들의 빛나는 영광들을 들려주며 우리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인상파 화가 모네는 그의 작품 수련을 끝으로 절망과 슬픔, 수모와 모욕의 삶을 마무리했다. ‘물과 반사광’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수련을 완성하기까지 그의 삶은 상실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영원한 연인 카미유와 큰 아들의 죽음. 연이어 두 번째 부인마저 떠나보내야 했던 모네의 불행. 빛보다 어둠이 많았던 화가였지만 찰나의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는 풍경을 표현하고자 했던 모네.
빛 속에서 변화무상한 사물을 보았지만 빛 속에서 눈을 잃었던 수련의 화가, 모네는 빛의 화가였다. ‘절망했기에 모든 것을 위로할 수 있’었던 모네였다.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는 나이 일흠에 결장암과 폐색전증을 앓으며 그의 미술은 끝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음의 끝에서 가위로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었다. ‘푸른 누드’는 선과 색의 통합을 이룬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 마티스는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극복한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삶의 끝에서 후회와 허무가 몰려올 때 75세 나이에 손자와 손녀가 사용하던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그랜마 모지스는 101세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늙음과 죽음 앞에서 새로운 인생을 창조한 화가들의 열정은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근친 간의 결혼으로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던 로트레크는 152cm에서 성장이 멈추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파리의 가장 어두운 곳 몽마르트르에서 ‘가장 낮은 계층과 소외된 자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며 묘사했’ 던 로트레크.
36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내 인생은 내가 선택’ 한 로트레크의 그림인생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줍니다.
화가와 조각가의 사이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었던 모딜리아니. 운명의 여인 에뷔테른을 만나 성공의 기회를 엿보지만 연이은 실패로 약물과 술에 의존해서 살아갈 뿐이다. 에뷔테른과 딸마저 떠나고 혼자 고립되었던 그는 결핵성 뇌척수막염을 앓고 3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연인 에뷔테른도 모딜리아니를 따라 투신 자살한다.
그 후 모딜리아니 작품은 세상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들의 묘비에는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라고 적고 있다.
진병관의 ‘위로의 미술관’은 25명의 화가와 그들이 남긴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 외로운 날의 그림들,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로 구성돼 있다. 무엇을 보고 읽든 이 겨울에 따뜻한 온기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