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멜리 노통브 지음
프랑스 정신과 벨기에 유머
일본의 예의가 절묘하게 혼합된 아멜리 노통브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소설!
이 소설은 일정한 소설적 형식도 없다. 일체의 소설적 장식을 거부하고 오직 두 인물의 대화 만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희곡 같은 소설이다.
흔히 소설의 5단 구성이니 배경이니 갈등이니 이런저런 자잘한 소설적 요소를 배제하고 작가의 현란한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두 인물의 대화는 갈 수 록 흥미진진하다.
우연히 공항 대기실에서 만난 그들은 무미건조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탐색하다가 이윽고 살인과 공동묘지, 강간이라는 폭력과 죽음의 언어를 내뱉으며 부푼 입술이 서서히 붉게 달아오른다.
고양이의 밥을 자신이 먹고 동료 학생에게 살인 주문을 걸고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서 여자를 강간하고 사소한 이유로 자신의 부인을 식칼로 잔혹하게 죽인 고백을 들으며 두 사람의 언쟁은 최고점에 달한다.
창의 공격과 방패의 수비가 교차되고 엇갈리며 자칫 말꼬리를 잡는 말싸움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말속에는 철학과 종교, 인간본성에 대한 잠언들이 있다. 그냥 시정잡배들이 내뱉는 욕설이나 우격다짐이 아니다.
등장인물인 텍셀은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산다는 일은 원래 잡스럽게 불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자체를 정신 나간 짓으로 만들거든요. 고상한 형이상학적 문제보다 차라리 찌질한 말썽거리들이 존재의 부조리를 확실하게 보여주죠.”
자칫 어려운 말 같지만 찬찬히 정독해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심지어 신의 무기력과 침묵을 강하게 비판하며 급기야 신앙이 없다면 우리는 자유인이라고 일갈한다. 즉, 신의 부정과 종교의 부정을 말하는 것이다.
천상에 있는 신보다 지상에 있는 인간들 각자가 갖고 있는 ‘내면의 적’ 을 더 중요시한다.
그래서 텍셀은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한다.
“머리 위에서 너그럽게 군림하는 신과 함께 산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자신의 뱃속에 사는 악의에 찬 폭군에게 붙들여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다시 되돌아가서 고양이의 밥을 먹은 것과 두 건의 살인, 그리고 묘지에서의 강간과 아내를 죽인 사건은 우리 마음 깊숙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내면의 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이 존재했다면 강간과 살인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결국 신은 침묵했고 무기력했던 것이다. 그 대신 내면의 적이 ‘황폐한 몰락’과 ‘친구들의 저열함’과 ‘고통받아 마땅한 이유’를 보여 준다.
저만치 거리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서로 치고 받는 난타전 끝에 점점 간격을 좁히더니 급기야 놀라운 극적 반전에 일어난다.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내부의 적을 갖고 있다네, 바로 나지.”
두 사람이 치열한 설전을 펼쳤지만 결국 한 사람의 의식에서 나온 두 사람의 대화였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악의 본성, 내면의 적을 ‘이중자아’를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때쯤 되면 우리는 뒤통수를 맞은 듯 큰 충격과 놀라움에 빠진다. 아마 지금까지 읽었던 스토리가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에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토록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대화 중심의 독특한 구성방식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아멜리 노통브는 프랑스에 활동 중인 벨기에 작가이다. 컴퓨터 대신 노트와 펜으로 소설 창작을 하는 그녀는 25세 때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데뷔하며 그때 당시 ‘무서운 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블랙 유머와 반전의 묘미를 두루 갖춘 그녀의 소설은 많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국내 많은 연극인들이 ‘적의 화장법’을 각색하여 연극무대에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는 3월 29일 동네책방 가문비나무아래에서 막을 올릴 스승과 제자, 전장곤과 김남호 배우의 연극에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원작과 이를 각색한 연극 한 편을 꽃피는 봄날 저녁에 감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