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수 지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르러 가장 좋은 미래, 그러니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출근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술 먹는 시간, 꽃 피는 시간, 낙엽 지는 시간, 비와 눈이 내리는 시간, 고양이 밥 주는 시간 등 등. 어쩌면 우리는 째깍째깍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된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은 어제에서 오늘 그리고 내일로만 흐르는 것일까요? 과연 시간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일출과 일몰의 무한반복이 시간의 몸통이라며 획일적으로 편성된 시간 속에서 아이에서 어른으로 늙어 갑니다.
하지만 시간의 궤도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없을까요?
소설가 김연수는 시간에 대한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삶이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로 가는 역순행적 시간을 꿈꿉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상상을 합니다.
조금 삶이 나른하고 권태로울 때 또는 고통과 환멸이 무한 반복될 때 미래에서 현재로 거슬러 올라가며 살아 보라고 말을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평범한 미래를 미리 상상하고 미래 어느 시점에서 과거가 돼버린 현재를 살면 우리가 이미 보았던 미래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은 견딜만하다는 것입니다. 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할 만합니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 수록작품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세 번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물론 그 각각의 삶들은 완전히 다른 유형들입니다.
우선 그냥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첫 번째 삶이 있고 어떤 상상의 미래를 설정하고 이미 과거가 된 현재를 살아가는 두 번째 삶이 있으며 그 현재에서 자신이 경험한 미래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세 번째 삶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세 번째 삶이 중요한데요, 그 이유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맨 나중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온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고 말을 합니다.
결국 좋은 미래를 품고 살아가면 지금의 하찮은 모든 것들이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면에 미소를 품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라는 이야기이죠.
그러면 어떤 미래를 품고 살아가야 할까요? 그의 단편 ’진주의 마음’ 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음껏 생각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너의 미래가 될 거야”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싶나요?
김연수가 상상한 시간의 개념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 편에서 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간은 미래로 흐른다는 고정적 편견을 버리고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와요. ”시간 여행을 통해 시간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시간이 없으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죠.”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인간의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김연수의 소설 ’비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편에서 인간의 시간이 그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 역설합니다.
지구의 나이 사십육억 년을 일 년으로 치면 한 달은 약 사억 년, 하루는 천삼백만 년, 한 시간은 오십오만 년이 된다’ 며 인류의 등장과 문명이 시작된 시간이 고작 4시간 정도라 생각하면 우리가 가진 하루의 시간이란 참으로 헤아릴 것도 없는 허공, 무 자체입니다.
그래서 김연수는 인간이 가진 찰나적 시간을 확장하기 위해 특정 공간을 연결하여 깊고 팽창된 시간을 만들어 냅니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주인공 손유미는 바다에서 수백년 전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죽고자 했던 정난주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식을 잃은 슬픔을 ‘정난주의 바다’ 를 통해 이겨 냅니다.
결국 정난주 이후의 시간이 손유미의 시간으로 이어지며 근 200년 정도의 시간으로 확장됩니다. ’바다‘라는 공간의 영원성을 매개로 유한한 인간들의 미세한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시간은 확장됩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시간의 팽창이 이뤄질 때 시간의 깊이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처럼 작가 김연수는 시간이라는 재료를 적절히 활용하여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공간과 공간을 잇는 마술적 시간을 창출합니다. 그것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작품에서는 시간으로 맺어진 우연의 사건이 먼 과거의 기억을 불러와 다시 현재로 이어지는 마법과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결국 기억의 힘을 통해 잊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이죠. 주인공이 제주도로 가는 선상에서 그 해 4월 봄 바다로 떠나버린 아이들을 기억하려 합니다. 다시 현재로 시간을 잇고자 합니다.
그래서 김연수는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 고 말을 합니다.
시간과 기억, 사랑의 단상에 대한 이 소설집은 한 번 읽으면 뭐가 뭔지 모르고 두 번쯤 읽어을 때 겨우 시간의 다양한 변종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왜 이 소설이 2022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