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양미 지음
일류가 되지 못한 쌈마이 인생들을 위한 팡파르
김양미의 첫 소설집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는 작가의 말처럼 쌈마이들의 이야기들이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삼류 찌질이들의 좌충우돌식 해프닝과 B급 인간들의 눈물겨운 밑바닥 인생들이 폭포수처럼 무한정 펼쳐진다.
줄줄이 사탕으로 엮은 7편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흡입하며 눈을 몇 번 껌뻑거리자 벌써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이 보인다. 정말 눈 깜짝할 새 읽었다. 그렇다고 휘발성만 높은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소설집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는 만일 지금 당신이 무료하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당신의 지긋지긋한 시간을 활활 불태워 한바탕 폭소를 짓게 할 재미 만점, 웃음 만점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웃긴 이야기들은 너무 슬픈 이야기들이다. 한번 씨익 웃고 나면 묘한 슬픔이 배꼽 아래에서 일어난다. 이 세상 쌈마이들의 너절너절한 삶의 애환들이 비단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ADHD 증후군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비정상에 관하여‘ 와 ’내 애인 이춘배‘ 그리고 3류 용역 깡패들의 눈물겨운 냥이 장례식을 다룬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등은 웃음 속에 슬픔이 있고 슬픔 속에 웃음이 있는 단편들이다.
인생만사 모든 고통과 슬픔을 웃음으로 극복하고 승화했던 한민족 특유의 정신승리법이 이 소설집을 관통하고 있다. 과연 5천만 민족을 웃게 만드는 김양미표 유머 코드는 무엇일까?
우선 작가 자신이 매우 낙천적인 성격과 천부적인 유머감각을 장착하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좀 웃기는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저런 희로애락에 주눅 들지 않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기 위해서는 명랑한 태도와 긍정적인 마음이 중요한 조건이다. 고통과 아픔을 해학으로 빚어낸 문장력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선천적인 재능이다.
이런 재능은 단순히 말재주가 아닌 글재주로 이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작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의도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이리저리 인물들을 툭툭 치며 드리블하다가 그 어디쯤 독자들이 풋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지점에 슬쩍 해학과 풍자가 넘실거리는 대화나 문장을 쭉 깔아 놓는다.
그것은 웃음제조의 기초코드인 언어유희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결국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들은 백발백중 걸려들고 만다. 이 소설들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소설집이 무조건 재미있거나 웃긴 것만은 아니다. 가정폭력의 섬뜩함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케잌 상자’ 와 행복의 기준에 대한 작가적 의문과 결핍된 사람끼리 상호연대하고 위로하는 ‘방어 대가리’ 편은 또 다른 성격의 단편들이다.
김양미 작가의 언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어도 금방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관념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다. 화려한 수사기법이나 애매모호한 심리묘사도 없다.
오직 일상의 언어, 체험의 언어로 밀어붙인다. 이것은 쉽게 익힐 수 없는 내공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허락되지 않는 문장들이다. 소설 ’샤넬 No. 5’ 나 ’소설 속 인물‘ 편에서 그녀가 얼마나 소설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단 그녀는 소설가 김양미라는 고유 브랜드를 등록하고 알리는 데 성공했고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유망작가가 되었다. 조금 더 개성만점의 자기 스타일로 우리의 아픔과 불행이 봄날의 꽃봉오리(춘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벌써 곱창 굽는 양미 씨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