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정임 지음
세상의 모든 밤을 향해, 잘자요
여러분은 프랑스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그려지시나요?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 센강 위로 피어오르는 밤안개처럼, 파리는 문학과 기억의 도시로 다가옵니다.
함정임의 소설 ‘밤 인사’는 이 프랑스 파리를 중심 배경으로, 동해의 간절곶에서 부르고뉴, 세트, 페르피냥, 포르부, 그리고 부산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따라 엇갈리는 세 인물의 우연과 운명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미나’라는 인물은 연인을 잃은 깊은 상실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타인과의 밀착된 관계보다는 단절과 거리, 고요한 고독 속에 머무르지요. 이국의 도시 파리에서조차 그녀는 거리의 풍경에 녹아들지 못한 채, 낯선 산책자처럼 주변을 맴돕니다.
이것은 그녀의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납니다. 함께 여행하고 가까이 머물지만, 정작 아무 관계도 아닌 모호한 상태에 머무르고 맙니다. 언뜻 보면 연애소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사유를 품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름과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발터 벤야민과 포르부인데요, 미나의 발걸음을 이끄는 벤야민은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철학자로, 상실과 불안, 망명과 죽음의 궤적을 따라간 고독한 사유자입니다. 미나는 그를 끊임없이 호출하며 내면의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는 미나의 사유를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자, 감정의 동반자입니다.
미나는 파리의 석조 건물과 카페, 묘지를 경탄과 환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착취와 억압, 죽음의 서늘한 그림자를 감지하지요. 이것은 벤야민이 말한 “문명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다”라는 명제와 연결됩니다. 또한 벤야민이 제시한 ‘플라뇌르(산책자)’의 개념도 미나에게 투영됩니다.
플라뇌르는 도시를 산책하지만 도시에 흡수되지 않으며, 자신의 시선으로 도시를 관찰합니다. 소설 속 미나는 쇼핑도, 사진도, 여행의 기록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저 철학자와 소설가의 문장을 불러내고, 미술과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다듬어며 도시를 산책합니다.
그 여정은 결국 벤야민의 마지막 장소, 포르부로 이어집니다. 미나가 그곳에 가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단순한 애도나 여행이 아닙니다. 그곳은 그녀 자신의 기억과 상처, 감정을 조용히 정리하고 싶은 장소이자, 내면의 사유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종착지입니다.
고요한 슬픔, 말보다 더 큰 침묵 속에 숨겨진 마음을 따라 읽다 보면, 이 소설은 어느새 우리 마음 속에 스며들어 밤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