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해나 지음
오해와 결별로 얼룩진 관계를 다독이는. 지금 여기, 가장 특별한 가족 드라마
왜 이리 눈물이 날까?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잠깐 소설을 덮은 채 일그러진 얼굴을 맨손으로 쓸어내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까?
이 소설은 마치 슬픔과 쓸쓸함으로 직조된 광목천 같다.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점점 몸 깊은 곳에서 소금기 묻은 슬픔이 차오른다. 결국 부풀어 오른 물풍선이 순식간에 터지듯이 느닷없이 내 울음도 터진다.
나는 이 소설의 끝자락에서 두 눈을 감고 삶이란 결국 허수아비의 꿈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와의 사랑도, 누구를 향한 미움도, 시간이 흐르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아득한 모든 것들. 말과 행위가 별다른 의미 없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헛한 것들이다.
그러나 어느 한 기억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끝내 살아남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성해나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은 두 소년이 우연히 한 가족으로 만난 후 헤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쓸쓸한 가을 숲길에서 유리조각을 밟으며 걷는 듯한 아픈 느낌이 든다.
사람을 향한 애정과 배려, 서로 어긋난 관계와 불편한 동거, 여러 무늬로 조각난 가족,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역설의 관계에서 내 슬픔이 꼬리연처럼 너울거린다. 서로를 향한 말과 행위의 파편들이 내 얇은 살갗을 뚫고 들어와 목젖에서 똬리를 튼다. 거기에 슬픔이 있다. 왜 나는 슬픔을 느끼는 걸까?
그 소설 속 어머니의 목소리가 우리 어머니의 목소리를 닮았기 때문일까? 그 옛날 어린 나를 데리고 철길을 건너 쌀동냥 하러 다녔던 어머니. 그리고 어린 자식을 데리고 새로운 남자의 사진관으로 들어와 또 다른 가족을 이루고자 했던 그 소설 속 어머니의 말과 몸이 겹쳐온다.
그들이 겪은 이별과 상실의 뒤에도 살아남은 기억들이 훗날에 다시 떠오른다. 두 아이가 서먹하게 먹었던 중국식 냉면과 그때 고소하게 퍼져 나가던 땅콩냄새. 인릉으로 나들이를 나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 사진. 다시 어린 자식을 사진관에서 데리고 나와 막막한 생을 맞이했을 그 어머니의 무너진 마음 앞에서 슬픔이 올라온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어긋난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위해 온 정성을 다 기울이는 그 어머니의 무용한 사랑에 마음이 계속 아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하는 것들은 사람을 더욱 슬프게 한다.
사랑을 준 사람도 그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머물렀던 그 여름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다. 살다가 사랑하다가 그냥 헛되게 사라지고 남은 자는 또 살아가게 되며 우리는 수많은 여름의 먼 기억을 남기게 된다. 성해나의 소설 ‘두고 온 여름‘ 을 읽고 나면 서늘한 여름의 잔향이 지렁이처럼 허벅지 안쪽에서 기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