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국민학교 시절, 텔레비전에서 ‘뿌리’라는 미국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강제로 끌려간 흑인 노예 쿠타 킨테와 그의 후손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였습니다.

흑백 TV만 있던 시절, 목화밭에서 일하던 흑인들의 고된 노동, 거친 땀마저 검게 보이던 풍경 너머로 가죽 채찍이 원을 그리며 등짝을 내리치는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40년도 넘은 드라마의 장면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고, 주인공의 이름까지 또렷이 떠오르는 걸 보니, 어린 시절의 제게 그 드라마는 깊은 충격이었나 봅니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어린 흑인 소녀 코라의 자유를 향한 고난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일상화된 폭력과 살인, 극한의 노동과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 죽음을 각오한 탈출은 오직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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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코라 자신까지 3대에 걸친 노예 생활은 아프리카 흑인의 비극사를 고발하는 동시에, 인디언을 쫓아낸 땅 위에서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은 미국의 잔혹사를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조지아에서 인디애나 역까지 이어지는 여섯 개의 지하 기찻길은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는 통로이며, 자유를 향한 길이자, 때로는 선량한 백인들과의 연대의 길이기도 합니다.


실제 역사에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흑인들의 탈출을 도왔던 비밀 조직망이었지만, 이 소설에서는 상상 속의 진짜 지하철도로 구현되어, 서사적 힘을 담아 냈습니다.


지하 기찻길로 연결된 각 지역은 백인들이 흑인을 지배해온 다양한 방식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지역은 폭력과 살인, 공포를 도구로 지배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선의로 위장한 통제와 억압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흑인과 백인이 함께 만든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했지만 결국 외부 백인들에 의해 파괴돼 버린 ’인디애나의 발디미르 농장’까지.


코라의 여정은 희망과 좌절의 반복이었습니다. 그 길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자유란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를 묻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성폭력과 살인, 잔혹한 학대 등 폭력적인 모습을 감정 과잉 없이 절제된 문체로 그려내며, 주인공 코라 외에도 다양한 인물의 시선을 교차시켜 미국 사회의 이면을 다층적으로 드러냅니다.


또한 노예 소녀와 노예 사냥꾼의 추격전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다소 느린 서사 전개 속에서도 독자의 집중력을 이끌어냅니다. 노예제 시대로부터 20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 차별은 이민자 혐오, 빈곤층 낙인, 제도적 인종주의 등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도 어딘가에는 또 다른 형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여전히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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