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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새벽, 후퉁에서 길을 잃다

- 중국 북경 방문기


새벽 1시

북경공항에 비가 내린다.

한동안 나는 공항 라운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가고 바깥 풍경은 어둠 그 자체였으며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이 낯선 곳에서 며칠 동안 국외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공항 소파에 앉아 어떻게 호텔까지 가야 될지 고민했다.

이미 버스와 공항 철도 등 대중교통은 끊어진 지 오래이고 남은 이동수단은 심야 택시뿐이다. 간혹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호객꾼들이 행선지를 묻곤 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났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쉽게 따라가서는 안된다.


아직 데이터 로밍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았는지 구글 맵은 작동되지 않는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그 거리마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과연 나는 이 밤에 무사히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혼자만의 여행은 항상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나는 아무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호텔 주소를 내밀었지만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하긴 유명 호텔도 아닌데 그저 주소만 보고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기사는 당혹해하면서 차창을 열고 옆에 있던 경찰들에게 물어보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나는 주소지에 있는 전화번호를 가리키며 'call'이라고 말하자 기사는 잠시 망설이더니 전화를 건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몇 마디를 나누더니 출발했다.

내가 찾는 호텔, imperial courtyard hotel 내부


나는 'ok?'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그도 'ok'라고 답변을 한다. 택시는 비 내리는 도로에 올라서더니 쏜살같이 달린다. 마침 구글 맵도 작동이 시작되면서 숙소의 위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공항 주변의 풍경은 비와 안개가 뒤섞여 그 어느 것 하나 보이지 않는다. 대략 30분 정도 달렸을까. 

북경 도심 안으로 들어선 듯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이제 조그만 가면 숙소에서 편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숙소 근처에 도착한 듯 하지만 호텔은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택시는 큰길에서 작은 도로로 우왕좌왕하며 골목길까지 두리번거렸지만 'lmperial courtyard Hotel'은 보이지 않았다. 기사는 다시 전화를 하고 위치를 확인했지만 그도 좀처럼 찾지를 못했다.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이 새벽에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는 또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과감히 택시에서 내려 구글 맵을 따라 호텔을 찾기로 했다.




택시비는 예상외로 100위안 정도 저렴하게 나왔다. 관광 안내 책자에는 140위안 정도 거론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은 편이다. 더구나 택시기사도 끝까지 숙소를 찾아주고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배낭을 어깨에 맨 채 골목길로 들어섰다. 일명 베이징의 후퉁이다.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부슬부슬 흩날렸다. 골목은 가로등 하나 없이 컴컴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 조차 아무도 없었다. 순간 나는 약간의 두려움이 들었다. 벌써 시간은 새벽 2시로 향하고 있는데 이 낯선 북경의 골목길에서 국외자가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암담하였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구글맵뿐이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구글 맵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주변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아이폰 화면만 응시한 채 길을 찾아 나섰다.

이미 호텔을 예약하기 전 위치가 시내 중심이 아닌 후미진 골목 부근인 것은 대략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엮인 곳에 있을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마도 주택가 인 듯했다. 골목은 좁고 길었으며 좌우측으로 끊임없이 뻗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글 맵이 지시한 호텔 위치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호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막다른 담벼락이었다. 건물 뒷면을 보아도 호텔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구글 맵은 완전한 오류였다. 그 순간 무서움이 몰려왔다.

이러다가 숙소를 찾지 못하고 북경 후미진 골목에서 불상사를 당하거나 아침까지 헤매는 것은 아닌지. 

나는 몇 번이고 그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호텔 비슷한 곳은 보이지 않았고 멍청한 구글 맵은 똑같은 위치를 반복적으로 지시할 뿐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여러 골목을 헤매고 헤매고 있을 때 마침 2명의 젊은 순찰자들이 눈에 보였다. 나는 다가가지 마자 호텔 주소지를 보여주며 'help me'라고 말했지만 이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 폰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북경을 찾은 낯선 여행자에게 그들은 무관심했으며 불친절했다.

그들은 돕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정처 없이 골목길을 헤매고 다녔다. 혹시 경찰서라고 보이면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불가능했다.

어느 듯 시간은 새벽 2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후미진 골목길에서 외국인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그들이 북경 여행자들이라면 호텔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곳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왁자한 노래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근방에서 마침 지나가는 중국인이 있길래 다시 도움을 요청했지만 또다시 거절을 당했다. 


그때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외국 여인이 'hey' 그러더니 호텔 주소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밤의 천사가 나타났다.


이리저리 보더니 자기도 잘 알 수가 없었던지 곧바로 호텔에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 중국어를 못할 텐데 어찌 전화를 할까 의심스러웠는데 흰 털모자를 쓰고 가죽 부츠를 신은 그녀는 시원시원하게 중국말로 퍼붓고 있었다. 아 이제는 잠을 잘 수가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순간 그녀가 그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끝까지 나를 괴롭힐 요령인지 그녀의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 아닌가.  그때 옆에 있던 올블랙 복장의 친구가 스마트 폰을 내밀었고 다시 그녀는 통화를 시작했다. 나는 연신 땡큐를 연발했다. 통화를 마친 그녀는 내게 호텔 위치를 말해주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no understand'라고 하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자신의 자전거를 끌고 오더니 'follow me'라고 한다. 

우리 셋은 어두운 골목길을 오랜 친구처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짤은 영어지만 몇 개의 단어만으로 조합하여 해석해 본 결과 그녀들은 스페인 여인이었고 북경에 대략 3년 정도 있었다고 한다. 

자기네들도 이 골목길은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한국이 낳은 국제적인 가수 '싸이'를 아느냐고 하자 올블랙의 그녀만 알고 있다고 했다. 그녀들은 연신 유쾌하게 떠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리저리 10분쯤 걸어을 때 맞은편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다가왔다. 올블랙의 그녀는 "당신을 데리고 갈 호텔 웨이터"라고 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숙소 앞에서 그녀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 같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인도 아닌 유럽의 스페인 여인들에게 도움을 받다니 여행 첫날부터 색다른 경험을 한 셈이다.




나는 웨이터를 따라 호텔로 이동했다. 웨이터는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그는 '소녀시대'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중 '제시카'라고 했다. 또한 런닝맨을 자주 보고 '하하'도 잘 안다고 했다. 

한류의 열풍을 실감했다.

나는 커다란 붉은 등 두 개가 대문을 밝히고 있는 곳을 들어서자 이내 약간 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그러자 숙소 로비가 나왔고 마침 중국 무술영화에 나오는 듯한 객잔풍의 숙소가 나타났다. 온통 붉은색 벽면과 붉은 등이 전등 행사하듯 연이어 매달려 있었다. 

나는 간단히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다소 작은 방이다. 그러나 중국풍의 고유한 멋이 물씬 풍기는 내부구조였다. 옛날 건물인지 벽면은 다소 낡았고 화장실은 무척 좁았다. 중국식 침대가 한쪽 구석에 있었고 작은 티브이가 놓여있었다. 어차피 잠만 잘 계획 이니고 급스러운 호텔은 필요가 없다. 

다만 냉장고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숙소까지 왔다는 자체가 안도감을 주었다. 자 이제 잠시 잠을 자고 아침에 본격적으로 북경을 탐사하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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