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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과 용의 궁전 자금성이 열리다

2. 중국 북경 방문기


새벽 3시경 잠이 들었지만 여행지에서 첫날밤은 항상 뒤척거릴 수밖에 없다. 낯선 곳에서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본다. 역시 집에서 아주 멀리 와 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열어 시간과 북경 날씨를 확인한다.

여전히 북경은 안개와 흐린 날씨를 예고한다. 다소 실내는 춥다. 온돌방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따뜻한 맛이 떨어진다. 밤새 히터를 틀어 놓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세면실은 아주 좁고 조금 낙후되었지만 호텔 구색에 맞게 갖출 것은 모두 갖추었다.

칫솔과 치약. 샴푸와 바디 워시, 드라이. 따뜻하게 온수를 틀고 샤워를 한다. 

새벽 동안 차가워진 몸을 달구기 시작하자 점차 기분이 좋아진다. 

침대 위에서 여행안내 책자를 펼쳐놓고 대략 이동 코스를 가늠해 보고 9시 10분경 호텔을 나섰다.

투숙객들은 많지 않은 듯 아침나절 조용하다.

골목길로 나서자 오늘 새벽 한 치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던 동네의 요모조모가 눈에 들어온다.

숙소 근처의 후퉁. 북경 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깨끗하다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이곳은 일반 주택들이 가득 들어찬 동네이다. 큰 도로로 나오자 전철 표지판이 보인다. 

전철역까지 잘 조성된 인도가 길게 뻗어 있다. 마치 작은 숲길을 만들어 놓은 듯 낮고 작은 나무들 때로는 우람한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구라우다찌예 전철 역으로 가는 길. 마치 숲 속을 걸어 가는 듯 하다


여기저기에 벤치들이 설치돼 있고 공터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기차놀이하듯 집단 체조를 하고 있으며 아저씨들은 새장을 들고 나오거나 탁구를 치고 있다.




대략 5분 정도를 걷자 구러우다찌예 전철역이 나타났다. 나는 매표소에 가서 '마이카'라고 말하며 100위안 주자 역 승무원은 보증금 20위안과 나머지 충전금액을 노트에 적어서 내게 보였다. 나는 'ok'라고 말했다. 그리고 개찰구를 들어서려는 순간 공안은 보안 검사대에 가방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북경은 전철역 내에서도 철저히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북경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으나 플랫폼 내에서 수신호를 하는 별도의 안내원이 있었다. 


전철 안은 여느 지하철과 다름이 없다. 나는 내부를 한 번 둘러보고 내려야 할 역을 응시했다.

젠궈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천안문역에서 내려야 한다. 한차례 다른 전철역에 내려 혼란스러웠지만 다시 전철을 타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출구로 나가자 이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대오를 이루며 앞으로 나아갔다. 50미터 정도 천천히 걸어가니 역시 보안 검문대가 나왔고 철저히 가방과 몸수색이 끝난 후에야 천안문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천안문은 청 순치제에 의해 1651년 재건되었으며 이후 승천 문에서 천안문으로 바뀌었다. 전쟁을 종식하고 세상을 하고 싶은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드디어 모택동 주석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중화인민공화국 만세'와 '세계 인민대단결 만세'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천안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아치형 중앙 문을 통해 고궁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새가 날개를 편듯한 오문이 등장했다.

하늘을 흐리고 다소 쌀쌀한 날씨 했지만 자금성 안은 인산인해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지인 이곳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에게도 특별한 장소인셈이다.

드넓은 박석들이 촘촘히 박혀있고 붉은 벽돌이 높고 단단하게 다섯 누각을 지탱하고 있다. 나는 오문에 올라 천안문과 태화문 방향을 바라보았다.            

오문에서 바라본 자금성


자금성 내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수많은 누각과 석조 조각품들로 가득 차 있다. 그야말로 자금성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오문의 정중앙에서 군대의 사열이나 출병식을 바라보고 있었을 황제를 생각하니 무소불위의 권력을 느낄 수 있다. 


오문에서 내려와 금수교에 섰다.

옥석으로 만든 아치형 다리이다. 5개 다리 중 황제가 건넜다는 중앙 다리의 난간 기둥에는 용과 물결모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그 아래 금수(golder water)가 흐른다. 

                    


나는 황제 전용의 정중앙의 다리를 건넜다. 내가 몇 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감히 건널 수가 없었던 금기의 다리인 셈이다. 중국 대륙을 통일한 청나라가 한족과의 화합을 위해 만들었다는 태화문을 지나자 바로 눈 앞에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목조건물이 태화전이 나타났다. 

태화전은 명, 청 양 시대에 걸쳐 24명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즉위. 결혼, 황후 책립, 군사 출정 등 국가의 중요한 대사를 치렀다. 건물의 높이 약 27미터, 동서 길이 약 63미터의 거대한 궁전이다. 태화전의 3단 높이의 기단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태화전을 받치고 있다. 기단에는 1,488개의 기둥인 망주가 있는데 용과 봉황이 교대로 새겨져 있다.

또한 1,142개의 용머리 배수구가 설치돼 있어 비 오는 날 토해내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천용 토수라고 한다. 건물의 단청은 화려한 금단청이며 붉은 기둥과 황금색 용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하다. 

중국 최대의 목조 건물 태화전. 청나라가 한족과의 화합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태화전 안의 초대형 나무기둥이 있는데 역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태화전에만 용이 자그마치 12,654 마라기 있다고 한다. 황제의 옥좌 주변에는 황금으로 도색한 기둥인 반색금칠대주와 바닥에는 금전 4,718개를 깔았다. 그 수미단 위에 옥좌가 있다. 


                              

중국 황제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하는 웅장한 자태의 자금성 내부

 

나는 태화전과 중화전을 지나 보화전의 뒤편으로 돌아가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곳은 약 45도 경사진 커다란 어로석에 용과 파도 및 구름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쌍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운룡 대석조였다.                    

황제 만이 올라 갈 수 있는 운룡 대석조


나는 곧장 직선으로 빠져나와 역대 황제들의 후원이었던 어화원으로 갔다.

자금성 안에서 유일하게 나무와 새를 구경할 수 있는 장소이다. 160그루의 나무가 심어진 다소 좁은 면적이지만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와 이상하게 생긴 수석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퇴수산은 태호석으로 만든 인공산이고 그 정상에 정자가 있다.  어화원을 끝으로 신무문으로 빠져나와 경산공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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