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굿모닝! 베트남

- 언제나 삶을 축제처럼.. 여기는 하노이

여기는 하노이.

비가 오고 있었어.

새벽에 도착한 하노이. 아침에 일어난 바깥 풍경은 비 그 자체였어.

어쩌면 난 비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지도 몰라.


이미  공항에 내리기 전 하노이 밤하늘에서 천둥과 뇌성이 치는 것을 보고 있었지. 두려움보다 설렘.
온전한 비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지도 몰라.


어제의 일을 잊고 낮부터 하노이 맥주를 마시며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지.

어쩜 그 속에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철없는 소년이 울고 있을지도 몰라. 

그를 만나 악수를 나누며 포옹을 할 수 있다면. 

그래 비.. 비가 오고 있었지. 

비가 오면 온전히 내 몸속으로 들어가 내 모든 감각의 문을 열고 세상을 느끼게 되지.

그때 나의 하노이 여행은 시작되는 거야.



비와 함께 여행은 시작되고 하노이의 일상이 시작된다.


키 큰 나무가 보이고 빗 속에서 하노이 시민들의 일상이 시작되고 있었지.

호텔 문 앞으로 논라를 쓰고 가이앙을 어깨에 맨 베트남 여인이 지나가고 있었지.

내가 처음 본 하노이 여인. 이상하게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지.

문득 뛰어가 그녀를 안고 싶었어. 

논라와 가이앙. 베트남의 상징. 한 여인이 지나간다


그녀의 삶도 나의 삶도.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 삶을 살아 내기 위한 노동은 어디 가나 마찬가지지.

그녀를 본 순간 내가 살아온 고역의 생애가 생각이 났어. 그것을 잊기 위해 여기로 왔는데. 

묵묵히 빗 속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산다는 것의 고단함을 느꼈어.

 

오토바이들은 북소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듯 도로를 질주하고 낯선 이방인들이 골목골목에 서성거리고 있었어. 그래. 여기는 하노이. 낮고 허름한 건물들이 줄을 지어 등선을 이루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란 나무들은 높게 하늘로 뻗어 있어.




비는 점점 그치고 있었지.

그리고 도착한 호찌민 묘소.

넓고 넓은 바딘 광장. 붉은 별을 단 깃발은 공중에서 나부끼고

하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차렷 자세로 말이 없었어. 묘지 앞 본홍색 꽃잎은 비에 젖어 있었고 한 여인은 두 손을 모으고 호찌민 묘소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 너무 엄숙해서 감히 옆을 지나갈 수가 없었어.


베트남인들의 영원한 민족 지도자. 호치민의 묘소


인도차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 호찌민

프랑스와 미국 등 서양 제국주의자와 맞서 승리를 쟁취한 위대한 국가, 베트남.

베트남 민중의 자존과 제국주의에 대한 맹렬한 투쟁정신이 살아 있는 곳. 이곳은 호찌민 박물관.

호찌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건물.

열대성의 정글과 폭염. 스콜성 기관단총 소리가 난무하는 전쟁터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했어.


베트남의 해방과 독립을 염원한 유물관 옆.

인간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못꼿 사원이 있어. 원각문으로 들어서자 본전이 보였어.


열대 과일들과 노랗고 붉은 열매들이 제단 위에 올려져 있고 황금 옷을 입은 부처님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어. 향불이 경내에 가득 차고 찬란한 금색 빛을 띠는 조각품들은 너무 아름다웠어. 


좌우 양측에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축원하는 영정 사진과 명패가 놓여 있었어. 나는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죽은 자의 영혼과 산 자들의 행복을 빌었지.

그리고 뒷문으로 들어서자 연못 위 굵은 기둥 하나에 절간을 세운 일주사가 보였어. 1049년 만든 연꽃 모양의 사원. 유독 부녀자들의 기도가 줄을 지었어. 남아선호 사상의 악습도 여기도 있지.


못꼿 사원의 경내와  일주사의 모습

큰 나무 아래 앉아 주변 풍경을 바라봤어. 먹구름은 물러나고 무더위가 엄습하기 시작했지. 

금발의 서양 할머니가 물끄러미 사원을 바라보고 있고 이따금 기념품 가게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렸어. 




문묘를 향해 길을 잡았지만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어. 황금빛의 주석궁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마치 어리숙한 여행자를 노리는 택시 기사가 유혹적인 신호를 보냈어. 어쩔 수 없었어. 

아직 베트남 화폐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택시비는 기사 본인이 알아서 주섬주섬 지폐를 헤아려 끄집어 가지.

돈 계산할 줄 모르는 여행자. 바가지 덫에 걸리기 딱이지.

1070년에 세워진 베트남 최초의 대학 문묘. 도시 속의 정원이다.


문묘. 공자의 위패를 모신 베트남 최초의 유학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마치 고요한 도시 속의 정원에 들어선 것 같다.



문묘는 높고 굵은 나무와 회색 빛의 석조물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

베트남과 유학자. 병존과 양립이 불가해 보이지만 어린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고 위엄에 찬 훈장 선생들의 일침이 들리는 듯했어.


전통 베트남 건축 기법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경내, 경내 좌우에는 82개의 진사제명비가 있다.


간절한 기도 그리고 넓은 배움의 광장.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공자를 모신 사당에는 아버지와 어린 딸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 입신양명을 위한 절대적인 소망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어. 문묘를 빠져나오자 점점 하노이 하늘은 더운 열기로 가득 찼어. 

갈증이 나고 묵직한 발은 점차 무거워졌어. 체면 불구하고 바지와 신발을 모두 벗고 싶었어.

오토바이의 소음이 더욱 여행자를 지치게 만들고 할 수 없이 그늘진 카페를 찾아 들어갔어. 얼음잔과 함께 하노이 맥주를 시켰지.

백발의 노인과 금발의 미녀들이 낮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어.

이젠 어디로 가야 하나.


하노이의 시원한 맥주 그리고 바깥은 더운 아스팔트 위에서 일상의 노동이 펼쳐진다.


하노이 시내 지도를 펼쳐 놓고 이런저런 고민을 해봤어. 난 항상 여행 첫날은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야.

어차피 출발할 때부터 정해진 일정은 없었지.

그냥 걸어 보기로 했어. 걷기 시작할 때 풍경은 보여. 그 순간 도로 길을 따라 논라를 쓴 여인이 자전거에 과일 바구니를 올리고 장사를 하고 있었어.





어느 듯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시장통에 이르렀어.

과일행상의 여인과 꽃 파는 아줌마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지. 

우연히 들어선 하노이 시장. 진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난도질 당한 숑강의 물고기는 눈을 부릅 뜬 채 낯선 이방인을 응시하고 있고 오후 한 나절 아예 좌판에 누워 오수를 즐기는 장사꾼들이 여기저기 보여. 남녀가 아무렇지 않게 널부르져 잠을 자고 있어. 저렇게 장사를 해도 생계는 유지할 수 있을지. 괜히 내가 걱정이 되더군.

하지만 그들에게 돈 몇 푼 벌지 못해도 뭐가 문제랴. 유유자적 낮잠이야 말로 한순간에 즐길 수 있는 행복이지. 


기찻길 옆 오막살이. 거기에도 인간의 삶이 있다


걷고 걷다 보니 주택가 중앙에 철로가 깔려 있는 모습이 보여. 

이국의 풍경이 신기 한 듯 금발의 미녀가 철길을 걷고 있었지. 나도 그녀를 뒤따라 걸어 보았어.

그야말로 기찻길 옆 오막살이.

지난한 삶들이 철길 옆에 똬리를 틀고 생을 이어가고 있었지.

달리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그곳에서 밥을 먹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빨래를 하고 술을 마시며 살지. 철길이 이어지듯 인간의 생도 이어지는 법이야



호안끼엠 호수 근처. 쉴새없는 오토바이의 행렬과 프랑스 풍의 건물들


다시 택시를 타고 호안끼엠 호수로 갔어.  여긴 구시가지와 달리 여행자들의 천국 같았어.

오래된 프랑스식 건물들이 즐비하고 금발과 흑발이 민소매와 쪼리를 신고 여유만만하게 배회하고 있었어.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질주. 도로는 넓고 오토바이는 많아. 

도로변으로 씨클로가 달리고 호숫가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늙은 고목은 무거운 나뭇가지를 호수 속으로 밀어 넣고 인간을 위해 그늘을 내놓았어. 오래된 원시림이 도시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 했어.

호수 주변으로 가족과 연인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젊은이들은 웃통을 벗고친구들과 함께 신기에 가까운 제기차기를 하고 있었어.

어김없이 거리의 화가들은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고 빗자루와 걸레를 든 여인들은 화장실 사용료를 받고 있었지

화장실은 깨끗하지만 좁고 불편했어. 


서서히 호수 주변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은 발그레한 얼굴을 드러냈어.  자전거를 자신의 이동 가게로 삼아 빗자루와 쓰레기통 등 다양한 생활물품을 파는 여인이 지나가고 그림을 파는 가게는 예쁜 등불을 밝혔어.
토마토와 오이, 달걀을 내놓은 노점상도 보였어. 헬륨 풍선을 든 어린아이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었지.



그야말로 하노이의 밤은 축제의 밤이야.

수많은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어울려 거리와 골목마다 다국적 언어로 시끌벅적해.

모두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쌀국수를 먹고 오토바이와 씨클로 타고 장사를 하고 흥정을 하는 여행자의 도시야. 하노이 시민들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모든 것을 잊은 양 친구와 동료와 어울려 유쾌한 목소리로 떠들고 놀고 있어. 그들은 분명 하루를 즐길 줄 아는 현명한 사람들이야. 오늘 일이 어찌 되었던 내일의 일이 어떻게 되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그냥 오늘을 즐기고 있어.

그들을 몰래 훔쳐보며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웃고 떠드는 목소리들이 내게 말을 하는 것 같아.


"이봐 친구.. 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삶을 가볍고 여기고 순간을 즐겁게 보내도록 해봐. 그럼 당장 행복해 질 수 있어"


전등불 아래 낮은 의자에 앉아 함께 맥주를 마시고 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하노이 시민들


그래. 삶은 가볍고 즐거운 여정이지. 

나는 왜 이토록 힘든 과거를 안고 현재를 괴롭히며 미래를 절망하며 살아온 것일까?

그들은 저토록 삶을 축제처럼 여기며 가난과 상관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데..

나는 무엇에 대한 결핍으로 불행을 스스로 자초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참으로 어리석은 삶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 북경 방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