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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별천지, 하롱 베이

- 신들의  낙원에서 신선의 꿈을 꾸다


아침 7시 30분.미니 밴이 헬리오스 레전드 호텔 앞에 멈췄다.
하롱베이로 가는 승합차.




미니 밴은 호암끼엔 호수 주변의 게스트 하우스와 주변 호텔을 한 바퀴 돌며 하롱 배이 투어 참여자들을 태웠다.

대부분 금발의 여행자들이었고 경상도 말을 하는 한국인 부부 한쌍도 눈에 보였다.

여전히 오토바이 행렬은 길게 줄을 이었고 가인항을 멘 과일장수 여인은 또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윽고 하노이 시내를 벗어나자 투어 가이드의 유쾌한 입담이 시작되었고  말귀가 통하는 대부분의여행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옆 자리에 앉은 금발의 처녀도 손뼉을 치며 까르륵 웃고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어느새 승합차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비교적 도로 상태는 괜찮은 편이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3시간 정도 달려가야 한다. 이 정도의 도로 사정이라면 장시간 여행도 견딜만하다. 예전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 비포장 도로를 무려 4시간 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메마른 흙길을 달리던 뿌연 먼지와 창 밖으로 보이던 끝없는 열대수들. 그리고 다소 황폐했던 오두막과 벌거벗은 아이들의 모습.


하노이 시 외곽의 풍경은 논과 밭의 평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하얀 오리들은 물장구를 치며 연못에서 자맥질을 했다. 특이한 석관 형태의 묘지들이 논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고 논라를 쓴 농부들은 허리를 숙이고 김을 매고 있었다. 하늘은 옅은 먹구름이 몰려 있었고 간혹 강한 빛이 차창으로 몰려왔다.


1시간 30분 정도를 달리자 승합차가 속도를 멈추더니 중간 휴게소에서 멈추었다.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하노이시 외곾 지역의 풍경과 중간 기착지에서 만난 베트남 자수 공장과 급발의 여행자들

그곳은 단순한 휴게소가 아니라 어느 기념품 공장에 들어선 것 같았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안으로 들어서는 데 놀랍게도 우리네 전통자수처럼 어린 소녀들과 키 작은 여인들이 열심히 자수를 놓고 있었다.

섬세한 손놀림으로 베트남 풍경을 담은 다양한 작품들이 주변에 걸려 있었다. 옥을 깎아 만든 부처의 상과 코끼리와 새 등 다양한 조각품들이 진열돼 있는 곳을 무심히 지나쳐 한쪽 구석에서 따듯한  밀크 우유를 주문했다.

달달한 커피.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승합차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리자 어느새 하늘은 맑고 푸른색을 드러냈다. 저 멀리 작고 아담한 능선들이 보이는 듯했다.

분명 그곳은 하롱베이일 것이다.

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하롱 베이의 모습과 선착장의 풍경


크루저 선박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들어서자 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밀조밀한 리조트들이 항만을 따라 줄지어 서있고 멀리 하롱베이의 첫 얼굴이 보인다.

흰구름이 바다를 향해 낮게 내려앉아 있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앞서 점심을 먹기 위해 4인 1조로 테이블에 앉았다. 대만에서 온 두 명의 아가씨와 한 명의 젊은 남자와 한 조가 되었다.

한국에서 홀로 왔다고 하자 대만 여성이 대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왠지 반갑고 정겨웠다.

이내 테이블 위로 삶은 새우와 낚지, 두툼한 튀김 생선 그리고 계란말이와 밥 뭉치들이 올라왔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삶은 새우를 조심스럽게 통째로 씹어 보았다. 약간 견갑류의 날카로운 껍질이 혀 안을 찔렀다. 입 안이 살짝 아팠다. 그래도 대만 여인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리고 튀김 고기를 양념에 찍어 먹어 보았다. 조금 대만 아가씨들 앞에서 입을 히죽 벌리고 밥을 씹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대만 미녀들과 함께 먹은 선상의 푸짐한 런치 식사


드디어 배가 바다로 향해 나아갔다.

불과 몇 미터를 나아가자 기암절벽들이 물 위에 뜨 있었다.

마치 부처의 엄지 손가락 끝 부분이 수면 위로 튀어나온 듯 길고 복잡한 행열을 이루고 있었다.

바다는 고요했고 하늘은 흐렸지만 이내 밝아 왔다.


2층 선상은 하늘과 바다, 바람과 햇빛을 느낄 수 있는 최상의 공간. 금발의 남자는 웃통을 벗은 채 일광욕을 즐기고 연인들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풍경 속에 젖어 있었다. 별천지의 바다로 들어선 이방인들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한 채 하롱 베이의 아름다움에 물들고 있었다.
먹구름과 푸른 하늘이 변화무쌍하게 할롱 만을  비추는 가운데 크루즈 선은 하롱 베이의  수상 골목길로 들어 서고 있다


바다의 속살 깊숙이 들어갈수록 궁극의 푸른 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그 작은 섬들 사이로 살포시 들어서자 이내 마치 고요한 호수에 있는 듯했다.


그리고 카누 타기 투어가 시작됐다. 대만 청년과 한 조가 되어 나는 후미에 앉아 플라스틱 노를 저었다.

잠시 뒤뚱거리던 카누는 이내 중심을 잡고 바다로 나아갔다.

거대한 바위가 살짝 눈을 뜬 듯 물 위에 생긴 낮고 작은 암석 터널을 지나자 놀랍게도 밝은 햇빛이 쏟아지면서 넓은 물의 광장이 나타났다. 참 놀라웠다.

속세에 무친 분네들은 홍진들을 다 털어내고 아이처럼 카누와 보트 놀음에 흠뻑 빠져 들었다


사방팔방으로 깎아 내린 절벽들이 우람하게 서 있고 카누와 보트를 즐기는 여행자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엉성하게 노를 저으며 여기저기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수면은 따듯했고 수심은 깊지 않았다. 이따금 노를 놓고 카누에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행복했다. 내 존재의 모든 것을 느꼈다. 그것으로 이번 여행은 충분했다.


그리고 이 하롱 베이 투어의 백미인 티톱 섬으로 이동했다. 벌써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모두 거대한 티톱 석상 아래에서 사진 찍기 바쁜 모습이다. 매점에서 한국산 소주도 보였다.

이미 해변가에는 벌거벗은 여행자들이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하롱 베이 최고의 전망을 보기 위해 가파른 30미터 높이를 올랐다.

청바지가 거대한 갑옷처럼 느껴지고 신발은 물 먹은 장화를 신은 듯했다.

꼭대기까지 오를 동안 다섯 번 정도를 멈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하롱 베이. 할롱 만에 뿌려진 수만 개의 어린 섬들이 푸른 하늘을 이고 앉아 있었다.


별천지의 세상.
내 두 눈으로 보고 있지만 쉽게 믿기지 않는 몽환의 풍경.
모든 아름다움이 시간으로 흐르지 않고 일순 정지된 상태.
주변의 소란스러움도 모두 멈추고 경탄의 탄성만이 터져 나왔다.


온몸의 고역으로 만나는 단 하나의 풍광. 이 풍경을 두고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계단은 내려가는 자와 오르는 자의 교차 길이다.

이미 나의 얼굴은 웃음이고 올라오는 자는 고통의 얼굴이었다.

바다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여행자들은 모래밭에 앉아 있거나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있다.

모두가 평화로운 모습. 도시와 문명을 벗어난 자연은 언제나 웃음과 즐거움이 있다.

해변의 이방인들 그리고 멀어지는 태양을 보며 다시 돌아가는 항구



짧은 신선놀음.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 선상. 서쪽으로 해가 기울고 있다.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다.

아주 천천히 배는 나아가고 풍경은 조금씩 멀어졌다.  바다 물결은 금빛으로 빛나고 태양은 구름 속으로 들락 나락 한다. 여행자들은 지쳤는지 처음과 달리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바다만 바라볼 뿐이다.

오늘 하루 우연히 만난 그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이 감탄을 하며 함께 하롱 베이의 추억을 공유한 그들.

우린 다시 항구로 돌아가고 있다. 하노이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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