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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안갯속의 이화원

- 서태후의 정원을 거닐며 아름다운 예술미를 느끼다

이화원의 북궁문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지독한 스모그는 지붕 용마루에 앉아 있다. 



역시 유명 관광지답게 많은 인파들이 몰려 있다. 조금 위로 올라 가자 돌다리가 나오고 관광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진 촬영과 먹거리를 들고 우물쭈물 먹고 있다.

쑤저우제. 북궁문에서 처음 만나는 장소이다. 1751년 건륭제의 아이디어로 강남의 물의 고향 쑤저우를 본떠 만든 거리이다. 중국인들이 지상낙원이라 부르는 쑤저우의 저잣거리를 그래도 모방한 곳이다. 나는 돌다리 밑으로 내려와 운하를 따라 형성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인공 운하에 지은 쑤저우제,  영화 세트장 처럼 중화복식에 각종 음식점과 선물가게들이 즐비하다


돌 기단 위에 중국식 목조 건물을 세우고 다양한 기념품과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마치 중국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했다. 장사꾼들도 전통복장을 한 채 호객행위를 하고 붉고 노란 중국식등은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스모그에 젖은 깃발은 힘을 잃은 채 허물어져 있다. 인공 수조에는 낙엽들이 떨어져 있고 연꽃 줄기는 말라 비틀어져 있다. 나는 그 옛날 황제들이 이곳에서 행인 행세를 하며 거닐었듯이 어깨에 힘을 주고 걸어 본다. 쑤어우제를 찾는 관광객들은 별로 없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리고 곧장 사대부주가 나타났다. 사대부주란 네 방위에 위치한 불교의 극락세계를 말하는데 건륭제가 티베트 소수 민족을 회유하기 위해 만든 라마사원이라고 한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가지런하게 깔린 박석을 밟고 올라서자 정면에 절벽과 같은 적색의 성곽이 우뚝 서 있고 그 위에 붉은색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과 그 뒤편으로 라마사원이 수직을 이루며 서 있었다.  나는 경사를 이룬 좌우측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북궁문 일대가 보였다. 

티베트 사원인 사대부주로 들어서는 길


온통 황금색 유약을 바른 기와지붕과 단청, 그리고 붉은색의 담벼락들이 끊어지고 이어지며 하나의 건축물을 이루고 있다. 나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마치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하는 고행의 구도자처럼 마음속 합장을 하며 오르고 올랐다. 만수산 경사진 벼랑에 이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웠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벽을 세우고 라마교식 첨탐과 망루를 올렸다. 곤명호에서 나온 바위를 만수산 위에 올려 바위 정원을 만들었는데 불교 사원 지혜해로 가는 길은 바위 굴 혹은 어지러운 바윗 길이다.

                    

안개 속의 사대부주, 위태로운 만수산 벼랑 위에 부처의 덕을 기렸다


이곳 지혜해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교 전각이다. 

만수산 정상 위의 중향문을 통과하면 목재를 전혀 쓰지 않고 석재와 벽돌로 만든 지혜해가 나타난다. 건물 벽면에는 1,000여 개의 불상들이 새겨져 있다. 


목이 날아간 불상도 보인다. 황금빛과 청록색 유리벽돌로 만든 벽면과 대리석 아치문이 보이고 기와지붕과 서까래 부분은 수려한 문양으로 치장되어 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조각품이자 예술품이다. 


지혜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조각품이자 예술품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건물에 정신을 빼앗기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만수산 정상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막상 평지로 내려오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약 29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광활한 이화원에 대한 안내 책자 하나 갖고 있지 않았다. 그냥 보이는 대로 오르고 남들 가는 대로 따라갔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을 상황이다. 너무 넓고 광활하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홍예 모양의 큰 통문과 단단한 회색 빛 벽돌로 높게 쌓아 올린 성곽 위에 2층으로 된 누각이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숙운첨이라는 곳이었다.

 나는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길 잃은 어린아이 마냥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고 볼거리 보이면 무조건 사진에 담았다.

무지개 모양의 쌍교와 숙운첨


역시 무지개다리 모양의 난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아름다운 서양 미녀들이 깔깔 웃으면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쌍교라는 곳이었다. 나는 다리를 건너 직진을 하자 아뿔싸 출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직 광활한 곤명호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퇴장이라니 어불성설이다.

다행히 출구 근처 안내소에서 이화원 지도를 하나 구입했다. 아마 이 지도가 없었다면 이화원의 갖가지 명소와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빈털터리 유람이 될 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만 있을 뿐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안내원에게 지도를 펼쳐놓고 가고자 하는 지점을 가리켰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은 슬쩍 지도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뭐라고 쏼라쏼라하신다.               

이화원의 전체 지도, 곤명호 일대를 쉽게 생각한다면 엉청난 발품을 팔게 된다.


말씀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손가락 방향은 지레짐작 이해할 수 있다. 나는 한 손에 큰 지도를 움켜쥐고 다시 숙운첨 앞으로 나아갔더니 근처에 많은 관광객들이 운집해 있었다. 나룻배 모양의 우람한 석조물이 곤명호 수면 위에 두둥실 뜨있고 2층에는 서양식 누각이 있다. 

아치형의 기둥이 선상 위에 세워져 있고 전면부에는 프랑스 풍의 스테인글라스가 새겨져 있다. 바로 청안방이다. 일명 석방이라는 돌배인데 이곳에서 서태후는 나라 망하는 줄 모르고 달빛과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선상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바깥에서 눈요기 정도만 하고 호수따라 걸어가자 중국 최대의 야외 미술관이라는 장랑이 등장했다.

서태후가 흥청망청 유희를 즐겼다는 청안방. 가라 앉지 않은 돌배이다


흔히 천 칸의 회랑이라고 불리는 천간 낭하이다. 역시 서태후 전용 통로이다.

이화원이 과도한 군사비를 낭비함으로써 청나라 멸망을 앞당긴 결정적인 패착이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중국 관광 발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까. 

여하튼 727미터에 이르는 장랑은 관광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회랑의 대들보에 민속과 신화 속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구경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서태후의 전용 통로였던 천간낭하

나는 근처 매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장랑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여행객들과 스모그가 넘실거리는 곤명호를 바라보았다.  벌써 한국을 떠나온 지 4일째.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가는 회귀의 여정이다. 다시 돌아가면  일상과 사람은 더욱 소중해 지고 친근해진다. 낯선 곳의 여행은 시간이 갈수록 친근해지고 친근해진 여행지에서 다시 돌아가는 곳은 또 다른 여행지가 된다.


그래서 여행은 회귀적이며 순환적이다.  정말 삶을 여행처럼 산다면 일상은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찬 신천지가 될 것이다. 나는 여행 첫날 북경공항에서 느낀 불안감과 두려움, 그리고 새벽 보슬비 맞으며 돌고 돌았던 후퉁 골목을 생각했다. 그렇게 여행은 나의 오감을 활짝 열어 살아 있다는 존재의 느낌을 주었다. 다시 일어나 정랑 끝을 향해 걸어가자 배운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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